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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에 평생 바친 ‘세계의 양심수’ 이태복 전 장관 별세

김정현 기자I 2021.12.04 09:51:15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3일 심근경색으로 별세

[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용산시장 지게꾼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한 뒤 노동·복지 운동에 평생을 바친 노동전문가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3일 오후 급성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이 전 장관은 사망 이틀 전인 1일에도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수원에서 열린 윤상원 관련 전시회에도 참석할 정도로 건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이데일리DB)
이 전 장관은 1950년생으로 충남 보령에서 출생해 서울 성동고와 국민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부터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을 시작, 1975년에는 흥사단 아카데미 지도위원 생활을 했다. 1977년에는 70년대 노동운동의 이론적 구심점 역할을 했던 도서출판 ‘광민사’ 대표를 역임하며 노동운동 일선에서 광폭 행보를 벌였다.

1970년대 말 비공개 노동운동 조직인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했다. 전노련 중앙위원 중 한 명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다. 1981년 학림사건으로 경찰에 연행돼 고문 경관 이근안의 조사를 받은 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86년에는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에 의해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 1988년 특별사면됐다.

1989년에는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편집실장을 맡았고, 같은해 10월 ‘주간노동자신문’을 창간해 발행인 겸 주필을 맡았다. 10년 뒤인 1999년에는 ‘노동일보’를 창간해 대기업 노조의 장기파업 등을 비판하고 노동운동의 복지 참여를 주장했다. 1996년에는 사회복지단체 ‘인간의 대지’ 대표를 했다.

2001년 3월에는 청와대 복지노동수석비서관, 2002년 1월 보건복지부 장관에 취임했다. 의약분업 사태 수습과 비정규직·정규직 격차 완화에 노력했다. 2007년 기름값, 휴대전화비, 카드수수료, 약값, 은행금리 인하 등을 주장하는 ‘5대거품빼기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다. 2013년 5·18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고, 2018년 매헌윤봉길월진회 회장, 2019년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 전 장관의 저서로는 옥중 서한집 ‘세상의 문 앞에서’(1992), ‘노동자의 논리와 희망의 노래’(1992), ‘전환기의 노동운동’(1995), ‘우리시대의 희망찾기’(1996), ‘기백이 있어야 희망이 보인다’(2000), ‘쓰러져도 멈추지 않는다’(2002), ‘도산 안창호 평전’(2006), ‘윤봉길 평전’(2019)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구로병원 장례식장 20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 새벽, 윤상원 열사가 잠들어 있는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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