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수식이 난무하는 증권업계에서 사람 그 자체를 탐구하는 사람이 있다.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인간의 뇌 자체가 주식투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라쿤자산운용 사무실에서 홍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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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대표가 증권업에 발을 들인 건 2007년의 일. 대학 주식동아리 회장을 역임한 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주식시장과 부딪치며 그가 생각한 것은 주식엔 답이 없다는 것.
그런 홍 대표가 주식시장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심리변화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낀 건 2018년 1월 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시장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지고 또 그 변화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더라는 것이다.
홍 대표는 “2017년 증시 상승장을 거치고 독서모임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치는데 2018년 하락장을 겪고 온 사람들은 겸손해져서 오더라”며 “개개인이 한 의사결정의 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때에 따라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굉장히 달라지는 게 흥미로워 지난해 10월 뇌과학 독서모임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올해 주식시장 역시 그에겐 매우 흥미로운 관찰거리였다. 보통 강세장이 오면 사람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돈을 벌지만 각자 자신만의 이유가 먹혔다고 착각하고, 그런 자신감이 타인을 부추겨 그들마저 시장에 진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올 상반기 강세장에선 개인들 대부분이 자신감을 얻었는데, 하반기 들어선 몇몇 대형주에 몰리던 수급이 중소형주로까지 확산하면서 돈을 번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갈라졌다”며 “그런데 11월부터 주가가 오르며 다시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감을 얻은 상태다. 이 때 도박 같은 것을 절대 안 하던 사람이 ‘주식 정도는 사람이 좀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둥 구조적인 이유를 들며 주식시장에 달려들면 돈을 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 예측도 전문가도 필요없다…그저 시장에 대응할 뿐
그는 사람의 뇌 자체가 주식 투자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뇌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패턴화해서 미래를 유추하는 특성이 있고, 심지어 아무런 관련 없이 일어난 일들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생각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확률론에 기반해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변수가 너무 많은 데다가 그 변수들끼리 영향을 미치는 ‘복잡계’의 세상이라 이러한 추론은 도리어 실패를 낳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주식시장엔 세상이 생각하는 ‘전문가’는 없다고도 그는 말한다. 홍 대표는 “치과의사가 충치를 치료하면 100번 중 100번은 완벽히 치료하는데 그런 사람을 흔히 전문가라고 한다”며 “그런 전문가는 복잡계인 주식시장엔 존재할 수 없다. 투자전문가를 ‘내일 주가가 오를지 맞추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대부분이 못 맞추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렇다고 해서 로봇이 투자를 잘할까? 그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홍 대표는 “알고리즘의 딥러닝은 인간 두뇌의 사고방식을 모방한 것일 뿐”이라며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게 장점이라는데 주가 자체가 감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감정을 보지 않는다는 건 중요한 데이터를 쓰지 않겠다는 얘기”라며 잘라 말했다.
주식시장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과거의 유의성으로부터 인과관계를 미약하게 추론하고,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나열한 뒤 새로운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시나리오를 성실하게 업데이트 할 수밖에 없다는 게 홍 대표의 생각이다. 그가 생각하는 투자의 전문가 역시 개별 투자 결과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사람이며, 그래야 장기적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연산속도가 뛰어난 컴퓨터(퀀트)를 접목하면 성과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업이 있는 대다수의 개인에게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세우고 매번 업데이트하는 거나 퀀트를 접목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런 개인들에겐 ‘시간이 없어도 되는 아이디어를 쓰면 된다’고 홍 대표는 조언한다.
홍 대표는 “돈을 따박따박 잘 버는 종목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주가가 올라있는데 그건 장부가(Book Value)의 증가추이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며 “재무제표는 1년에 4번 공시하니까 이때 순이익과 장부가가 같이 올랐는지, 장부가가 늘어났는데 유상증자 때문에 오른 건 아닌지를 따져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에 그저 매일매일 성실히 임한다는 홍 대표. ‘철학은 없어도 지향점은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대뜸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를 언급했다.
홍 대표는 “책을 보면 결과는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신이 만든 것이니 결과에 자만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며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겼으면 열반에 다가갔다는 책의 말 대로 매일을 임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알 수 없는 주식시장과 세상 앞에서 묵묵히 하루를 쌓아올리고 있다.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는… △서울대 투자연구회(SMIC) 14기 △2007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입사 △2016년 라쿤자산운용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