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에 거주하는 김상호(가명)씨는 대중교통으로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부산에 직장을 구했다. 김씨는 유명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급하게 원룸을 살폈다. 김씨는 보증금 100만원·월세 25만원짜리 원룸을 발견하고 해당 매물을 올린 중개업자에게 연락해 현장 방문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김씨는 방문 당일 당황스러운 일을 겪게 됐다. 중개업자가 김씨가 원했던 원룸을 보여주지 않고 다른 방들을 재차 보여주기 시작한 것. 이윽고 중개업자는 “손님이 원했던 방은 확인해보니 오늘 계약됐다고 하네요. 사실 손님이 말했던 금액에 맞는 방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다른 방 계약을 유도했다.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형적인 ‘미끼매물’이었다.
김씨는 출근 일자가 임박한 탓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중개업자가 권한 해당 지역의 일반 시세에 맞는 원룸을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허위매물 올린 공인중개사 처벌 강화... 허위매물 여전
허위 부동산 매물을 올린 공인중개사를 처벌하는 개정법 시행에도 원룸촌이 형성돼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허위·과장 광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시행한 개정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가 인터넷이나 모바일 앱 등에 허위·과장 광고를 띄우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부당광고란 존재하지 않는 허위매물을 올리거나 실제 매물이 있어도 중개대상이 될 수 없는 매물, 중개할 의사가 없는 매물 등을 인터넷과 앱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광고에 제시된 옵션이 실제와 현저하게 차이 나거나 관리비 금액이 크게 다른 부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부동산매물클린관리센터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접수된 부동산 허위매물 신고는 총 2만5295건으로 집계됐다. 2018년 2분기(1만7996건), 2019년 2분기(2만892건)보다 지속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부동산 앱 등에는 소위 '미끼매물'과 같은 허위매물이 여전했다.
지난달 26일 한 부동산 앱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보증금 100만원, 월세 25만원의 매물이 올라왔다. 해당 매물은 지하철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2층 개방형 원룸으로 에어컨·침대·세탁기·냉장고 등의 옵션도 갖췄다.
해당 매물을 올린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연락을 취하자 “허위매물 걱정하지 말고 방 보러 오면 된다. 100% 실매물 광고 중이다”라고 전했다. 해당 중개업자는 실매물을 보여준 뒤 비교를 위해 다른 매물을 보여주겠다며 보증금 300만~500만원대, 월세 40만~50만원대 원룸을 권했다.
앱에 등록된 매물의 계약 의사를 밝히자 해당 중개업자는 “같은 날 오후에 이미 다른 중개사무소에서 해당 매물을 다른 사람과 계약했는데 모르고 있었다. 광고는 내리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서울 관악구·구로구·금천구 등에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20만원대로 현실과 동떨어진 조건의 ‘허위매물’들이 즐비했다.
세부적 기준 부족... 허위매물 구분 쉽지 않아
개정법에 따르면 실제 매물이 있어도 중개할 의사가 없는 매물을 광고할 경우 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세부적인 기준이 없어 공인중개사가 애초부터 실수요자에게 '미끼매물'을 계약할 의사가 없었음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보증금 100만원, 월세 19만원짜리 매물이 발견돼 연락을 취했지만 “해당 매물은 집주인이 도배 작업을 한다고 해서 9월 중순께나 계약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후 인근 시세와 다를 게 없는 보증금 300만~500만원대, 월세 40만~50만원 수준의 매물을 권했다.
같은 날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보증금 200만원, 월세 17만원 원룸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허위매물이었다. 해당 부동산 중개업자는 “확인해보니 그저께 이미 계약했다. 그래서 광고를 방금 내렸다”고 말했다.
원룸 하나에 여러 부동산 중개사무소가 연결돼 있고, 한 부동산 중개사무소가 원룸을 계약했더라도 이를 다른 공인중개사에게 알릴 의무가 없다.
이에 애초부터 중개할 의사가 없는 ‘허위매물’을 올리고도 다른 공인중개사무소가 이미 계약한 사실을 몰랐다는 ‘편법’으로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
공인중개사간 과당경쟁 따른 부작용
허위매물 사례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공인중개사 간의 과당경쟁, 광고비, 해당 업계로 수많은 신규 인력 진출 등을 꼽았다.
한 공인중개사는 “수많은 공인중개소가 한 지역에 밀집돼 있다 보면 소비자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며 “보유하고 있는 매물을 알리는 광고비용도 만만치 않다 보니 최대한 인기를 끌만 한 매물을 올리는 과정에서 허위매물 유혹에 빠진다”고 말했다.
이어 “오랜 기간 부동산 업계에 종사한 사람들은 부동산 앱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며 “신규로 부동산업에 진출한 인력들은 확보하고 있는 고객 풀(Pool)이 없기 때문에 허위매물을 올리면서 소비자를 유치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관계당국에서는 공인중개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인중개사가 매일 하는 일이 본인의 매물이 거래 됐는지 안됐는지 확인하고, 공동망을 통해 새로운 매물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광고한 매물이 계약됐는지 안 됐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매물관리를 게을리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 공인중개사가 A라는 매물을 계약했다면 계약 사실에 대해 다른 공인중개사들에게 알릴 의무는 없다"며 "네이버 같은 경우 거래 완료 버튼을 누르면 문자로 통보한다. 공동망을 쓰는 사람들은 거래를 완료하면 곧바로 공동망에 공유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계약 성사 여부를 모를 수 없다”고 했다.
/스냅타임 고정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