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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 성폭행’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1일 오후 열린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는 이날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년6월을 선고했다. 4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이수와 함께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위력’(威力) 폭넓게 해석
안 지사의 혐의 모두를 무죄로 판단한 1심 재판부와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상대로 저지른 10차례의 범행 가운데 강제추행 한 번(2017년 8월 중순 충남도청 집무실)을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우선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별개로 판단한 1심 재판부에 비해 항소심 재판부는 위력의 개념을 폭넓게 해석했다.
1심은 위력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안 전 지사와 김씨 사이에 ‘위력에 의한 성관계’는 없었다고 봤다. 개별 사안에서 안 전 지사가 위력적 분위기를 만들었거나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안 전 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권력형 상하관계’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 위력이 존재했고, 작용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지위와 권세가 김씨의 자유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무형적 위·세력에 해당한다”면서 “별정직 공무원이라는 김씨의 신분적 특징과 내부 사정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취약한 처지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비서 신분인 김씨 입장에서 볼 때 안 전 지사의 사회적 지위나 권세 자체가 충분한 ‘무형적 위력’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피해자 진술 신빙성↑…무고 이유 없어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범행 전후로 한 김씨 태도 등을 토대로 “증언과 진술을 믿기 어려운 정황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 당시의 상황이나 세부적 내용 등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진술하기 어려운 내용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피해 사실을 허위로 지어냈다거나 무고 이유를 증명할 자료가 없다”고 했다.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던 ‘피해자다움’에 대해서도 “정형화 된 관점”이라고 꼬집었다.
안 전 지사 측은 △피해를 당한 다음날 아침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을 알아본 점 △안 전 지사가 이용하던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한 일 △피해를 당한 직후 동료들에게 장난을 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고 안 전 지사에게도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친근감을 표시한 점 등을 내세우며 “도저히 피해자라고는 볼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며 김씨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수행비서로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이 실제 간음 당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며 “피해자의 성격이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대처는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안 전 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범죄 사건 ‘성인지 감수성’ 유의해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폭력 사건 심리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뜻으로, 지난해 4월 대법원 판결에 언급되면서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분위기다.
1심 재판부도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핵심적이며 유일한 증거인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범행 전후 김씨가 보인 행동과 주변인에게 전한 메시지 등을 보면 ‘성범죄 피해자’로 보긴 어렵다는 게 1심 판단이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추행 등의 인정 여부를 따질 때 객관적 상황과 두 사람의 관계,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이 주요 부분에 있어 일관되고 경험칙에 비춰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며 “허위로 진술할 만한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사소한 부분에 일관성이 없다거나 최초 진술이 다소 불명확하게 바뀌었다 해도 진정성을 함부로 배척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김씨를 지원해 온 여성단체들은 “위력에 대해 좁게 해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판단 기준으로 처벌 공백이 만연하던 ‘우월적 지위’, ‘업무상 위력’ 성폭력 사건에 대해 그 특성을 적확히 파악해 판단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