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8일 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기습 발사했다. 이달 들어서만 해도 두 번째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의에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던 김정은 정권이 보란 듯이 ICBM을 발사한 것이다. 평화적 대화 제안에 무력 도발로 맞선 격이다. 규탄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이번 미사일 성능이 지난번보다 한층 개량됐다는 사실이다. 국방부는 “고도는 약 3700㎞, 비행거리는 1000여㎞”라며 고각이 아닌 정상 각도(45도)로 쏜다면 1만㎞가량 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뉴욕·보스턴 등 미국 동부 지역까지 도달하는 거리다. 그동안 낮게 평가했던 북한의 ICBM 개발 시기가 2년이나 앞당겨진 것으로 위협이 바로 코앞에 닥쳤음을 말해준다.
상황의 엄중함에 비춰 문 대통령이 “동북아 안보구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며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도록 지시한 것은 당연하다. 일반환경영향평가 실시 방침을 하루 만에 뒤집은 조치로, 그만큼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상황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더 나아가 우리의 독자적인 대북제재 방안 검토와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협상 개시 방침도 적절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지난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 논의를 진행 중인 유엔은 고강도의 ‘가중 처벌’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미국은 이번 미사일 발사가 미국을 직접 겨냥한 무력시위로 보고 제재 수위를 급속히 높일 것이라고 한다. 미 상원은 이미 북한의 원유수입 봉쇄 등 전방위 대북 제재안을 담은 패키지법을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런 사정인데도 우리 정부는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응징과 대화의 ‘투트랙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은 추가 핵실험을 준비하는 등 앞으로도 도발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대북제재를 놓고 미·중 간 갈등이 커지면서 우리의 운신 폭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당장은 대화보다는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에 보조를 맞추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