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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금융 포퓰리즘

송길호 기자I 2016.04.07 07: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포퓰리즘을 표방한 정당의 원조는 미국 인민당(Populist Party)이다. 1891년 저소득 영세농민과 노조를 기반으로 민주· 공화 양당 체제에서 제3의 정당으로 우뚝 섰다.경제적 합리성과는 동 떨어진 환심성 정책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한때 기존 정치지형을 흔들었다. 1916년 노스다코타 주지사 선거전은 그 분기점.이 선거에서의 승리로 주(州)를 장악한 인민당은 곧바로 은행을 설립한다. 미국 최초의 국영은행 노스다코타은행(Bank of North Dakota)의 탄생이다.

인민당은 대출확대에 전력을 다했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공장근로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활이 열악한 영세 농민이나 자영업자가 대상이었다. 그 결과 저소득 계층은 흥청망청 손쉽게 돈을 끌어다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무차별적 대출 확대의 후유증은 참혹했다. 훗날 경제공황기 은행권 위기의 불씨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예외없이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퍼주기식 복지공약은 물론 선심성 금융정책이 난무한다. 여야 정치권을 넘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금융당국까지 열을 올리는 모습. 금융권의 팔목을 비틀어 대출규정을 완화하고 화끈하게 빚탕감을 공언하고 있다. 흘러간 레코드판의 유행가처럼 들린다.

대표적인 예는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저소득계층 채무조정. 금융기관과 대출자의 모럴해저드, 성실 상환자들과의 형평성 등 그동안 논란이 많았는데 최근 금융위는 한발 더 나아갔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에 대해 원금의 90%까지 빚을 털어주겠다는 거다. 더불어민주당은 한술 더 떠 저소득·저신용 41만명의 부실채무를 아예 탕감해주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출이자율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방안은 선거판 단골메뉴다. 새누리당은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를 하향조정하겠다고 공언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우체국예금을 통해 중·저 신용자를 대상으로 10%대의 신용대출을 일으켜주겠다고 장담한다. 금융을 통해 구현되는 선심성 복지공약, 바로 금융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미국 최초의 국영은행이 포퓰리즘 정당에 의해 설립됐듯 금융은 언제든 포퓰리즘 정책의 기본채널로 전락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저소득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대중영합적 금융정책의 유혹에 노출돼 있는 법이다. 단기적인 재정부담 없이도 금융기관만 배후에서 옥죄면 마치 이들 계층의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처럼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혜택은 즉각적, 비용은 미래에 교묘히 분산되니 근시안적 정치인들에겐 참 매력적인 카드다.

금융을 통한 선심성 복지는 그러나 일시적인 진통제는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처방전은 될 수 없다. 농어촌 부채탕감의 실패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 무분별한 부채조정은 채무자의 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과도한 이자율 개입은 저신용 서민들을 제도권 밖으로 내모는 이른바 풍선효과를 초래한다. 대출자에게는 선거를 앞두고 버티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선한 채무자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 경제적 효율성과 형평성, 금융의 자기책임성과 신뢰성을 저해할 뿐이다.

복지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금융정책은 결국 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극히 제한적으로만 활용할 일이다. 자원배분상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시장실패를 보정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무차별적 신용확대는 자금흐름을 왜곡하고 생산적인 부문으로의 자금유입을 막아 경제의 좀비화만 가속화하는 법. 관치에 짓눌려 자생력을 잃어버린 금융이 무책임한 포퓰리즘과 만날때 가뜩이나 허약한 경제의 펀더멘탈은 그 밑바닥에서부터 균열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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