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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금 더 걷고도 증세가 아니라니

논설 위원I 2015.02.06 06:03:01
정부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연말정산으로 그렇게 혼나고도 부족한 모양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제 국회 ‘연말정산 관련 현안 보고’에서 증세의 개념을 놓고 의원들과 입씨름을 벌이다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그는 “세목 신설과 세율 인상이 아니면 증세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바보가 아닐진대 이런 억지 논리가 통할 리 없다. 의원들은 세금을 더 냈다는 국민과 증세가 아니라는 정부 사이의 ‘인식의 괴리’를 꼬집었다. 심지어 김광림 의원이나 류성걸 의원 같은 기재부 출신 여당 의원들조차 최 부총리와 견해를 달리했다.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연말정산은 4700억원 소득세 감세 패키지”라는 보고 내용을 적시하며 최 부총리의 ‘모순’에 결정타를 날렸다.

경제가 살아나 세금이 늘거나 비과세·감면 혜택을 줄이는 것은 증세가 아니며 연말정산도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으로 세수를 늘린 것은 아니라는 최 부총리 주장은 반만 맞는 말이다. 경기가 호전돼 부가가치세가 늘거나 소득증가분에 대한 누진세율 적용으로 세금을 더 낸 것도 증세라 하진 않는다. 하지만 깎아 준 세금을 환원시키는 비과세·감면 축소는 분명히 증세다.

연말정산만 해도 그렇다. 연소득 5000만~6000만원이면 대부분 교육비 100만원 지출에 따른 세금 감소 효과가 24만원이었지만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15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고소득층은 부담이 다소 늘지만 서민과 중산층은 외려 줄거나 비슷한 수준이라던 정부 설명이 먹혀들려면 세액공제율을 20~25%로 잡아야 했다. 의료비나 보험료 등 다른 공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러니 ‘꼼수 증세’라는 비난이 빗발치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유분수지 세금을 더 걷고도 증세가 아니라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노릇이다. 주민세는 회비 성격이므로 서민 증세가 아니라던 장관 못지않은 황당한 인식에 분노마저 치밀어 오른다. 이런 식이라면 연말정산을 재정산해 봤자 민심 이반만 재촉할 뿐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사안의 근본을 직시하고 무엇이 정도(正道)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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