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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불냈나'…잿더미 된 원양어선, 발화점 왜 2곳이나[보온병]

유은실 기자I 2023.10.28 08:00:00

통상 선박화재 발화점 1곳인데…최초 발화점 '어창', '어분실' 2곳
보험금 증액에 우현 어유탱크 개폐 정황까지 '보험사기' 의심

[이데일리 유은실 기자] “선원들 행적도 좀 수상쩍고, 발화점도 두 곳이나 되네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4000톤급 어선, 원인불명 화재…엇갈린 손해사정사 의견


2016년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페이프타운 항구에서 4000톤급 베니스호 원양어선이 원인불명 화재에 휩싸였다.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합동감식에서 손해사정사 두 명의 의견이 엇갈렸다.

손해사정사 A씨는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를 주장한 반면, 손해사정사 B씨는 선원·선주의 이상행동과 발화지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방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 화제의 경우 보통 최초 발화점이 1곳인데 이번 사건은 발화지점이 2곳이나 됐다. 누전 가능성을 제기한 A씨는 선박 회사 추천으로 선임된 손해사정사였고, B씨는 국내 보험사가 단독으로 선임한 손해사정사였다.

화재가 난 곳은 잡은 물고기를 넣어두는 ‘어창’과 물고기 어분을 보관하는 ‘어분실’이었다. 그런데 화재가 발생한 당일 어선엔 잡아둔 물고기가 없었다. 즉 어창과 어분실에 따로 전기 시설을 작동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선박 가입 보험금도 화재 발생 3~6개월 전 증액됐다. 이렇게 늘어난 선박 총 가입보험금액은 67억원으로 훅 뛰었다.

게다가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화수를 모두 배출했지만, 배가 우현으로 기운 상태를 유지한 특이점도 발견됐다. 화재 진압 후 선박 우현 어유탱크를 누군가 임의적으로 열어둔 정황까지 포착되자 보험사는 수사 의뢰를 실시했다.

1년 넘는 조사 과정…제보와 착수금 정황에 ‘덜미’

조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수사 의뢰를 했지만 방화에 대한 직접 증거 부족으로 수사착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선박 사고는 방화가 의심되더라도 보험금 부지급에 있어선 명백한 증거가 필요하다. 또 외국 국적 선박은 사고 사실을 국내 수사기관에 통보할 의무도 없어, 원활한 수사 진행이 어렵다.

1년 넘는 보험사의 조사 끝에 원양어선업체 대표이사가 직원 2명과 화재보험금을 타기 위한 사기극을 벌인 것이라는 제보와 함께 착수금으로 2000만원이 오간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양초 2개를 60도로 기울인 후 디젤류에 적신 수건을 감싸 방화 시간을 늦춘 뒤 알리바이를 만들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당시 방화 실행자는 도주했으나 모텔 장기투숙 사실을 확인되면서 결국 검거됐고, 방화 관련 3명에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보온병은 보험사기의 행태를 통해 사회의 ‘온’갖 아픈(‘병’든) 곳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보온병처럼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따뜻한 보험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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