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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는 9일 만에 수리됐다. 임기를 불과 37일 남겨 놓은 상태였다. 퇴임식에서 김 전 총장은 밝고 담담한 표정으로 퇴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는 “항상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순간의 지지에 들뜨지도 말고 순간의 비난에 흔들리지도 말아야 한다”며 당부의 말을 남기고 떠났다.
‘박연차 게이트’ 후폭풍 등으로 취임 당시 검찰 조직의 안정·쇄신이 당면 과제였던 김 전 총장은 불합리한 인사 관행을 혁신하고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검찰 인사기록 카드에서 출신지와 출신 학교를 지워 학연·지연 타파를 꾀했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기존 ‘상비군’ 체제에서 ‘예비군’ 체제로 바꾸는 등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또 사상 처음으로 화상회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검찰 내부 소통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법무부 국제법무과장 등 ‘국제통’ 이력을 바탕으로 대검 국제협력단을 발족해 국제 수사공조를 강화하고 세계검찰총장회의를 서울에 유치하는 등 한국 검찰의 위신을 국제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렇듯 검찰 조직에 인생을 바쳤던 김 전 총장은 2021년 ‘총장’이라는 직함 대신 ‘작가’라는 직함을 달게 됐다. 30년 검사 인생 동안 ‘졸렌(Sollen)’으로 살았던 그는 ‘자인(Sein)’으로서의 ‘나’를 찾기 위해 예술계에 발을 내디뎠다. 흙이 좋았던 그는 ‘흙작가’가 됐다. 그는 그간 틈틈이 만든 작품 50점을 모아 지난 22일부터 일주일 간 서울 북촌 한옥갤러리 일백헌에서 ‘흙을 만지며 다시, 나를 찾다’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김 전 총장에게 ‘65세’가 되는 2020년은 특별했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는 마음가짐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기존에 계획된 삶을 먼저 포기하라’는 말이 김 전 총장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총장직을 내려놓고 국내 대형 법무법인에서 변호사의 길을 걷던 김 전 총장은 지난해 내던지고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고교 시절 홍익대가 주최한 미술경시대회 ‘조소 부문’에서 금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한때는 미대 진학까지 꿈꿨던 그였기에 마음 한켠 못 이룬 예술가의 꿈을 좇았다. 그는 흙 작품 100점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조각 거장’ 권진규 작가 이후로 흙 작품 100점을 만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검사로서 성공했던 그는 흙작가로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