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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소연 이소현 손의연 기자] “미중 무역 분쟁에 일본의 무역 보복까지 가뜩이나 엎친 데 덮친 격인데 공공부문까지….”
재계 관계자는 8일 “‘하투(夏鬪)’가 본격화 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중재 역할에 나서야 할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대외 환경 악화로 가뜩이나 살얼음 판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는 노동계가 예고한 줄파업의 불통이 경제계 전반으로 확산하지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노동계가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정부에 내밀고 있는 ‘촛불 청구서’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선공약 이행과 현 노동정책의 폐기 등을 요구하는 노동계 앞에 정부가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文정부는 노동 탄압 정부…민노총, 강경 대응 고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예고대로 오는 18일 전국 대규모 총파업 등 강도 높은 대정부 투쟁을 강행할 방침이다. 비정규직 철폐, 탄력근로제 등 노동법 개정 저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재벌 독과점 해체, 노동기본권 확대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특히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최저임금 개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법 개정 움직임을 개악으로 규정 지은 민주노총은 정부의 노동 탄압·노동 개악 저지를 위해 총력 투쟁할 방침이다.
지난 3~5일 파업에 나섰던 민주노총 소속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언제든지 2차 총파업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기본급 6.24% 인상과 근속급과 복리후생비 등에서 정규직과 차별 해소를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공무원 최하위 직급의 80%’ 수준으로 임금 인상과 초중등교육법상 교직원에 포함해 달라는 것도 주요 요구사항이다.
노조의 이익을 위해 정부를 압박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 건설 경기 악화로 일자리가 위협받자 양대 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은 전국 건설현장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자신들의 조합원을 채용하라며 건설 현장을 점거하는 것은 물론, 협상이 결렬되면 보복성 신고까지 남발하는 모양새다.
민간 부문에선 주주총회장(주총) 점거도 서슴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 물적분할(법인분할)에 반대하며 지난 5월 주총장 점거 농성에 돌입한 바 있다. 현대중 노조는 2019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과 관련해 중앙노동위원회의 행정지도 결정에도 파업 찬반투표를 예정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자동차 업계 노조들도 하투를 예고한 상황이라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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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노조, 9일 예정 총파업 철회…정부 만응주의 생각 바꿔야
강경 대응 일변도에서 벗어나 대승적 결단에 동참하는 곳도 있다.
전국우정노동조합은 9일로 예정된 총파업을 철회키로 하면서 사상 초유의 우편대란을 피하게 됐다.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은 “정부가 앞으로 집배원 과로사와 관련해 개선하겠다고 했고, 파업 시 국민 불편이 심각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중재안을 수용했다”면서 “100%의 결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현장에 복귀해 보편적 우편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노·정 갈등의 근본 원인이 장밋빛 노동 정책 공약에서 비롯된 측면이 큰 만큼, 정부가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노정 갈등 등에서 비롯되고 있는 정치적 목적의 파업은 국가 경제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 사회 모두에게 상당한 비용 지출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공공부문을 포함한 노동계 전반의 높아진 기대 수준이 파업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이럴 때일 수록 사회적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노동계가 자기 몫을 챙기겠다는 생각으로 요구를 다 수용하라고만 하면 노정 대화가 가능하겠나”면서 “정부가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이럴 때일수록 사용자, 노동자, 정부가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