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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의상을 디자인한 이의 설명은 달랐다. 개회식에서 피켓걸 의상 디자이너로 참여한 금기숙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는 11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피켓걸의 의상 중 몇 가지 포인트를 제외하고는 한복의 형태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금 교수에 따르면 한복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킨 비밀은 목에 있었다. 추운 날씨임을 감안해 목도리를 두르도록 했는데 목 부분을 동그랗게 하지 않고 삼각 형태로 겹쳤다. 이 부분이 흡사 한복의 깃과 동정처럼 보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머리에 쓴 화관과 와이어 아랫부분에 화려하게 달린 장식들 역시 우리 전통 의상의 특징인 ‘떨새’를 연상케 한다.
떨새는 족두리나 큰 비녀 등에 다는 장식이다. 평소에 가만히 놔두면 움직이지 않지만 신부가 떨새가 달린 족두리를 쓰고 숨만 쉬어도 흔들린다. 에너지와 기, 생명의 표현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율동미를 대표하는 장신구이기도 하다.
두 가지 포인트만으로 ‘한복인 듯 한복 아닌 한복 같은’ 의상이 완성된 것이다. 이는 금 교수의 의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야했고, 그러기에 한복만한 의상이 없었다. 다만 그는 사극에서나 볼법한 전통 한복보다는 현시대를 반영해 한복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금 교수는 피켓걸 의상뿐 아니라 개회식에서 선보인 다른 의상들도 디자인했는데, 한복 중 가장 품위 있으면서 아름다운 도포 형태로 코트를 만들고 롱부츠 안에 정장 바지를 넣는 등 얼핏 보면 전통 한복처럼 보이면서도 실용적인 의상을 선보인 배경에는 이런 의도가 컸다.
다만 피켓걸 만큼은 실용성보다는 패션에 방점을 찍었다.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일 수 있도록 평소 즐겨 사용하던 와이어를 활용해 독창성을 극대화했다. 흰색 철사를 엮어 만든 풍성한 치마라인에 반짝이는 구슬을 엮어 눈꽃송이가 맺힌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와이어로는 전 세계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으며, 반짝이는 구슬은 선수들이 올림픽을 준비하며 흘린 땀방울, 즉 열정을 뜻한다고 금 교수는 설명했다. 이를 통해 ‘하나 된 열정’이라는 뜻의 올림픽 슬로건 ‘패션, 커넥티드(Passion, Connected)’를 형상화했다.
피켓걸로 나선 이들은 총 30명이다. 승무원 지망생이나 모델, 배우 지망생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올림픽에 참가하는 92개국 중 남북 단일팀을 포함한 총 91개 국가의 입장에 맞춰 세 차례 이상 옷을 갈아입었다. 금 교수는 소개 국가마다 피켓걸의 의상에 조금씩 변화를 줬는데 이를 통해 아름다움과 소중함에는 우열이 없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춥고 바람이 강한 평창에서 열리는 행사인 만큼 방한에도 신경 썼다.
보온성이 좋은 폴라폴리스 올인원 보디수트에 솜을 넣어 보온성을 높였고 핫팩으로 부족할 수 있는 부분을 채웠다. 그 위에 짧은 패티코트(Petticoat·치마를 부풀리기 위해 빳빳한 천으로 만든 속치마)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여성스러움을 강조했다. 목도리와 귀마개도 했으며, 신발은 당초 하이힐을 신기로 했다가 스포츠 행사라는 점을 감안해 두툼한 신발로 바꿨다.
금 교수는 3년 전 개막식 의상 제안을 받고 구상에 들어갔다. 제작에만 6개월이 걸렸다. 금 교수는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물이 호평 받고 있는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피켓걸은 보통 개최국의 민족의상을 입는 경우가 많지만 보편적인 상식을 깨는, 그것을 능가하는 멋있는 옷을 선보이고 싶었다”며 “한복을 입어야지 왜 한복이 아닌 것을 입느냐는 지적이 있을까봐 우려했는데 오히려 스스로 놀랄 정도로 호응이 좋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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