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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20년간 안 돌려준 버핏의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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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15.03.18 06:42:10

게이츠가 꼽은 '최고 경영서'
'카피' 부정적 반응 뜷은 제록스
2억달러 투자해 달랑 10만대 판 '포드 에드셀'
1950∼60년대 기업·증권가
세상 바꾼 12가지 경영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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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모험
존 브룩스|612쪽|쌤앤파커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내막은 이렇다. 1969년 미국서 책 한 권이 출간됐다. 존 브룩스(1920∼1993)의 ‘경영의 모험’(Business Adventure). ‘뉴욕커’ 금융전문칼럼니스트로 월스트리트와 기업을 향해 날카로운 필체를 꽂던 저자의 명망과는 달리 책의 운은 없었나 보다. 이듬해 절판되고 만다. 그런데 4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발단은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CEO.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 “내가 이제껏 읽은 최고의 경영서’”라고 써버린 거다.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그게 뭔데?” “무슨 책이야?” 당장 불난 호떡집이 된 것은 출판사였다. 문의는 쇄도하는 데 정작 내놓을 책은 없고. 부랴부랴 저작권자를 찾았지만 브룩스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 가까스로 그의 아들을 찾아내 재출간 협상을 했다.

2014년판 ‘경영의 모험’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나달나달해진 표지의 옛 ‘경영의 모험’을 들여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게이츠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달고. 그런데 끝이 아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추가되는데 게이츠가 어떻게 책을 입수했느냐는 거다. 여기에 유명인이 한 명 더 등장한다. ‘투자의 귀재’란 별칭의 워런 버핏이다. 경영서적을 추천해달라고 한 게이츠에게 버핏이 아예 책을 내줬다는 게 그 정황. 재미있는 사실은 게이츠가 결국 책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버핏에게 책을 빌린 지 20년이 지났고 초판이 나온 지도 4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제일 좋아하는…”이란 게이츠의 멘트는 책에 ‘금세기 최고의 고전 경영서’라는 타이틀을 내렸다. 버핏의 이름값으론 ‘억만장자의 바이블’이란 왕관을 씌웠고.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건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책이 다룬 건 1950∼60년대의 ‘핫’한 경영이슈 12가지다. 기업과 증권가를 배경으로 성장·혁신·정신·소통·비밀 등의 ‘첨예’한 문제를 뽑아낸다. 가령 ‘잘나가는’ 포드자동차의 신차 개발프로젝트의 역설을 헤집고, ‘혁신기업’ 제록스의 탄생과 성공, 월가에선 주가변동·내부자주식거래·주가조작 등을 파헤쳤다. 다만 이 전부를 아우르는 카테고리가 있으니 ‘모험’이란 것이다. 사실 모험쯤 돼야 불멸의 가치를 찾아 떠나는 도전을 오버랩시킬 수 있을 터. 게다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을 기업의 본질, 또 그 치열한 생태계 속 인간 본성까지 놓치질 않았으니.

누구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됐네 아니네 한 북새통과는 상관없이 탄탄한 내실이 책의 강점이다. 오늘까지 버릴 게 없는 기업경영의 성찰을 미리 챙겨낸 저자의 통찰이, 그 가치를 남김없이 읽어낸 두 대가의 통찰과 단단하게 맞물렸다.

▲완벽한 시스템은 준비된 실패

지금도 자동차지만 당시도 뜨거웠나 보다. 저자의 첫 사례는 포드자동차다. 대호황을 맞은 1955년 미국선 700만대의 승용차가 팔렸다. 포드가 가만히 있었을 리 없다. 에드셀이란 신모델을 야심차게 개발했다.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쏟아부은 비용만 2억 5000만달러다. 그런데 이후 26개월 동안 판매량은 달랑 10만 9466대. 미국 자동차 판매량의 1%에도 못 미치는 참담한 실패였다. 결국 3억 5000만달러란 손실액을 기록하며 1959년 생산중단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이유가 뭐였을까. 당시 정설은 지나치게 여론조사를 믿었다는 건데 저자의 생각은 달랐다. 기업 내 그릇된 의사결정구조 탓이란 거다. “오래전 가짜 약을 팔던 방식”인 직감만으로 되레 과학적 방법을 무시했다고 봤다. 당장 브랜드명이 그랬다. “19세기 기침약이나 가죽 닦는 비누”처럼 사장의 아버지 이름으로 지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례에서 끌어낸 저자의 성찰은 어땠을 거 같은가. “성공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어떤 장엄함을 실패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였다.

▲‘경영혁명’이란 기업의 사회적 책임

19세기 후반 기계식 복사기라 할 ‘등사기’란 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 평가는 이랬다. “사람들은 문서를 많이 만들길 원치 않는다.” 이 추세는 영단어에도 반영돼 있다. ‘카피’(copy)의 어감은 ‘사기’에 가깝다. 복제하는 행동에 대한 나쁜 평판 탓이다. 하지만 20세기의 상황은 돌변했다. 그 중심에 선 기업이 있으니 제록스다. ‘복사하다’(to xerox)의 동의어로 쓰일 만큼 제록스는 복사기사업의 대표 주자가 됐다.

쉬운 비즈니스란 게 있는가. 1906년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사업을 시작한, 제록스의 할아버지뻘인 핼로이드컴퍼니가 맞닥뜨린 건 카피에 대한 부정적 반응. 하지만 무명 발명가의 아이디어를 붙들고 끈질기게 일궈냈다. 이들의 성공이 빛나는 건 기계가 아닌 수요의 발명이다. 1950년대 2000만장에 불과하던 복사양은 1966년에 140억장으로 늘어났다. 저자의 평가가 여기서 그쳤을까. 당연히 아니다. 조잡한 실험실의 외로운 발명가, 가족 중심의 작은 회사, 고대 그리스어로 만든 상표명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돈이 아니란다.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감이었단다. 19세기 기업과는 정반대로 향한 그것. 경영혁명이란 그런 거란다.

▲4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기업가치는 ‘인간’

책은 저자가 10년에 걸쳐 주간지에 게재했던 기사 12편을 모은 것이다. 덕분에 정교한 체계 대신 심층적 분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례 곳곳에 박아둔 역사적·사회적 의미는 드라마틱한 그림까지 그려낸다. 배배 꼬지 않고 명쾌하게 주제를 드러낸 것도 미덕이다. 기업경영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건 돈이나 성과가 아닌 인간이란 그것.

그 덕에 결론은 단순하게 났다. 4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열쇠는 사람이었다. 게이츠나 버핏이 정말 책에 탄복했다면 굳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돼서가 아닐 게다. 공감일 거다. 오랜 세월 부침을 겪으며 올라선 자리에서 돌아보니 결국 사람밖에 안보이더라, 이렇게 감히 넘겨짚어도 될 듯하다. 먼 길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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