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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외국인 불법체류자 추방이후 중소기업

조선일보 기자I 2003.11.16 18:45:39
[조선일보 제공] 경기도 광주의 중소기업 금호텔레콤 배갑성(50) 전무는 최근 2차 하도급업체인 사장으로부터 “큰일났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 회사에 근무하던 불법체류 스리랑카인 3명이 강제출국 시한을 앞두고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었다. 사장 외에 직원이라곤 외국인 근로자 3명뿐인 이 하도급업체는 매달 1500만원어치의 케이블을 금호텔레콤에 납품해왔다. 배 전무는 “17일까지 거래하는 대기업에 20만m의 전선을 납품해야 하는데, 지금 확보된 물량이 8만m밖에 없다”며 발을 굴렀다. 배 전무는 “사장은 전선의 원자재로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동(銅)을 구하러 중국에 가 있고, 나는 하도급업체를 찾기 위해 조치원에 가야 한다”며 “이렇게라도 사업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혀를 내둘렀다. 불법체류자 강제출국 시한 마지막날인 지난 15일 인천 남동공단. 거리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공단본부 기업지원처 안보광씨는 “공단 전체 근로자 6만여명 중 10% 이상이 외국인 근로자”라며 “강제 출국이후 외국인만으로 공장을 운영하던 영세업체들은 조업중단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남동공단 47블럭 골목길에서 컨테이너 매점을 운영하는 박정숙(42)씨는 “하루 평균 20여명의 외국인들이 가게를 찾았지만 어제부터 한 명도 안 보인다”며 “강제추방 이후 오히려 한국인 직원의 불만이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박씨는 야간작업은 물론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외국인들이 나가면서 그 일을 대신 하게 된 한국 노동자들이 가게에 와 불만을 토로한다고 했다. 그러나 출국 대상 불법체류자들이 모두 공단을 빠져나간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 공단 근처에 잠적해있다. 남동공단의 프레스 업체인 대원정밀부품 강병교 부장은 “처벌이 두려워 말은 못하지만 외국인들을 숨겨주는 업체들이 많다”며 “잠적했던 외국인들이 밤에 몰래 찾아와 야간작업만 하게 해줄 수 없느냐고 묻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인근 Y사는 10년 넘게 필리핀인을 고용하고 있었다. 이 필리핀인은 공장 내에서 가장 경력이 많아 작업반장까지 맡고 있다. Y사 사장 정모씨는 “회사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을 어떻게 내보내느냐”며 “최대한 숨겨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남동공단의 사출업체인 신성화학 손양갑 이사는 “일 잘하고 우리말도 좀 하는 숙련공들을 내보내는 정부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며 “중소기업들에겐 국내서 오래 머문 불법체류자가 중소기업에는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의 사업주들도 외국인 숙련공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울 길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반월공단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양인호 사장은 “외국인 숙련공이 줄다 보니 공장마다 사람 빼가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공단 주변 상권은 불법체류자 강제출국으로 인해 희비가 엇갈렸다. 안산시 원곡동 시장골목은 최근 외지에서 몰려든 노점상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행용 가방을 길거리에 늘어놓고 팔고 있던 정모(47)씨는 “이민 가방은 한 달에 한두 개 팔릴까 말까인데 여기에선 보름 만에 50개 넘게 팔았다”며 희색이 가득했다. 수원에서 원정 판매나온 김홍식(45)씨는 소형 트럭에 2000원짜리 티셔츠, 2만원짜리 점퍼 등을 촘촘히 걸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출국을 앞둔 외국인들이 집에 가져갈 선물로 5~6벌씩 사가기 때문에 수입이 짭짤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단 인근에 점포를 임대, 둥지를 튼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었다. 반월 공단에서 정육점을 하고 김홍필(56)씨는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사는데, 다들 떠나니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고 난감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월세로 살던 외국인들이 방을 비우고 떠나면서 원룸 매물도 쏟아지고 있다. 한 달 20만원이던 월세는 이미 2만~3만원씩 값이 빠졌다. 원곡동 ‘평화부동산’ 관계자는 “원곡동은 외국인 집성촌이라는 소문이 나서 한국인 손님은 거의 없다”며 “방이 나가지 않아 집주인들이 모두 울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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