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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실업급여를 받으며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번 : 별다른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로 재취업 준비
2번 : 자신이 일했던 직종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한 재취업 준비
3번 : 기존의 경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력을 쌓기 위한 재취업 준비
여기서 문제.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제도는 세 가지 유형 중 누구에게 가장 유리할까.
정답은 1번, 별다른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에 재취업하는 유형이다. 높은 실업급여 하한액과 짧은 고용보험 가입 기간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최소 수급 요건은 실직 전 18개월 중 고용보험에 가입한 기간이 180일 이상인 경우다. 그러면 120일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주 5일 근무하는 사람의 경우 약 7개월 동안 일하면 4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1번 유형인 직장인 A씨가 7개월 동안 월 200만원 수준의 임금을 받다가 실직했다. 그러면 A씨는 4개월 동안 실업급여로 매달 185만원을 받을 수 있다. 실업급여 하한액 규정 때문이다.
실업급여는 평균임금의 60%로 산출된다. 하지만 평균임금의 60%로 산출한 금액이 최저임금의 80%로 계산되는 실업급여 하한선에 미치지 못하면 ‘최저구직급여액’(실업급여 하한액)이 지급된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실업급여 하한액은 일일 6만3104원, 월 기준으로는 약 189만원이 될 전망이다. 근로자일 때 얼마를 벌었든 내년부터는 실업급여로 최소 월 19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실직한 A씨는 4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은 뒤, 쉽게 전문성이 필요 없는 일자리에 다시 취업할 수 있다. 이렇게 월 200만원 수준의 일자리에서 일하다 실업급여를 받고, 다시 월 200만원 수준의 일자리를 반복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실업급여 하한액을 적용받는 사람은 매년 실업급여 수급자의 70% 이상이다. 반복 수급자도 지난해 기준 10만2000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전문성 일자리 재취업 준비하긴 턱없이 부족
2번과 3번 유형, 전문성을 발휘하는 재취업을 원하거나 새로운 경력을 쌓길 원하는 구직자에게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너무나 불리하다. 이들은 1번 유형의 구직자에 비해 취업 준비에 드는 돈도 시간도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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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실업급여 상한액은 고용보험료를 얼마나 냈든 하루 6만6000원, 월 198만원이다. 하한액과의 차이가 8만원 밖에 나지 않는 셈이다. 고용보험료는 직장인 임금에 비례해 더 오르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2번 유형인 직장인 B씨는 실직 직전까지 월 500만원 수준의 일자리를 다니며 10년 동안 높은 수준의 고용보험료를 냈다. 그래도 B씨가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 수준은 최대 8개월 동안 198만원에 불과하다.
B씨가 한 가족의 가장이라면, 직전 직장의 전문성을 살려 재취업을 준비하고 싶어도, 8개월 동안 198만원을 받으며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긴 버거울 것이다. 이에 B씨는 1번 유형으로 바뀌거나, 자영업의 길로 뛰어들지도 모른다.
◇“상한액·하한액 격차 벌려야…노동계와 논의 필요”
실업급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이미 상당하다. 특히 보험료 납부액이 실업급여 수급액보다 많은 근로자의 실업급여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상당히 낮은 상황이다. 이러니 실업급여의 하한액은 낮추고 상한액 올리고, 그리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 가입 기간과 실업급여 수급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제도개선에 나섰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7월 당정은 실업급여의 하한액 기준을 낮추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과 고용보험 가입 기간을 늘리는 방안 검토하기로 했지만, ‘시럽급여’ 논란과 노동계 패싱 논란이 커지면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보험이 보험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선 기여 수준에 따른 하한액과 상한액의 격차를 벌려야 한다”면서도 “한 번에 바꾸려 하기보다는 대원칙을 세우고 논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