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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코트 깃을 세워 얼굴을 반쯤 가린 남자가 비장하게 섰다. 묵직한 가방을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매끈한 몸체를 따라 눈을 내리면 바로 보이는 그 가방에는 우거진 나무 한 그루 들였는데. 풍경을 담은 가방과 함께 이 남자는 어디를 향하고 있나.
작가 김재호는 현대인과 현대사회를 조각한다. “욕망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 물질과 자본주의를 사는 현대인, 그 안의 나 자신”을 돌에 새겼다고 했다. 늘 뭔가를 고민하고 생각하고 ‘짐을 들고 진’ 남자는 그 대표자일 터. 옆으로 뻗은 팔과 어깨에 건물을 올리기도 하고, 바람 부는 숲을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했다. 햇살 아래서 휴식을 취할 때도, 담벼락에 기대어 섰을 때도 한결같이 묵직하다. 주요 소재인 대리석보다도 무거운 몸짓과 표정. 왜?
모든 하중의 원천은 집인 듯하다. 어느 작품에서도 그 남자는 집을 놓지 않고 있으니까. “도시 속 건물들은 울렁거리며 앞다퉈 위로 올라서는 듯한 위압감이면서 인간욕망의 덩어리로 보인다”는 고백도 했다. 강건하지만 평온하기만 한 형체가 가진 ‘반전’이라고 할까. 내가 들고 다니는 집과 세상을 꿈꾸는 ‘기다림’(2020)일지도 모르겠다.
22일까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새마을로 앤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김재호’에서 볼 수 있다. 대리석. 20×15×45㎝. 작가 소장. 앤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