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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회현지하상가에서 2대째 60년 동안 LP매장 리빙사를 운영하는 이석현 씨가 한 얘기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국내에서 16일까지 980만명(영진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동원하며 큰 흥행을 거둔 가운데 퀸의 LP 음반도 덩달아 인기다. 이 사장은 “워낙 명반이다 보니 꾸준히 문의가 있었지만 영화 흥행 직후에는 매일 50명씩 매장을 찾아왔다”며 “퀸의 히트곡을 모은 ‘그레이티스트 히츠’ 음반의 경우 7만~8만원에 인터넷에서 거래되고 있다. 물건이 많이 없다 보니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도 없어서 못 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 요인으로 ‘뉴트로’(New+(Re)tro) 열풍을 꼽는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트렌드코리아 2019’에 따르면 뉴트로는, 중장년층의 향수에 소구하는 레트로와 달리 젊은층이 자신들은 경험한 적 없는 옛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경향을 일컫는다.
실제 ‘보헤미안 랩소디’는 젊은층의 관심이 높았다. 관객의 기호·성향 등을 분석하는 CGV리서치센터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 관객층은 퀸을 아는 중장년층 세대가 아닌 퀸을 잘 모르는 2030세대였다”며 “초반에는 퀸을 경험한 40, 50대 팬들에게 어필하다가 점차 젊은 세대로 확대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30~40년 전 발표된 곡들에 ‘한물간’ 음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들어도 세련되고 파격적인 음악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흥미를 느낀다.
LP 음반도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인 것도 뉴트로와 무관하지 않다. 이 사장은 “요즘 매장을 찾는 고객의 70%가 2030세대”라며 “음악을 무형의 디지털 음원으로 접했던 젊은층들에게는 커다란 책처럼 보이기도 하는 유형의 LP 음반이 신선하게 다가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층이 뉴트로의 매력에 빠진 데에는 옛 것이 그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면서 과거에 검증된 콘텐츠(또는 아이템)로서 그 자체로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한 초등학생이 LP 음반을 직접 듣고 한다는 얘기가 ‘사운드가 3D 같다’고 하더라. 실제 LP 음반은 가청 영역 이상의 음역대를 잘라낸 디지털 음원과 다르게 모든 음역대를 보존하기 때문에 풍부한 사운드를 느낄 수 있다. 디지털이 추구하는 것이 아날로그에 가까운 감성인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아날로그를 완벽히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전했다.
퀸의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포털의 검색순위 클립영상을 장악하며 지난해 상반기 화제의 중심에 선 개그우먼 프로젝트 그룹 셀럽파이브(송은이 신봉선 김신영 안영미 등)도 과거의 검증된 콘텐츠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로움을 입힌 것이 먹혔다. 데뷔곡인 ‘셀럽이 되고 싶어’는 1985년 앤지 골드가 발표한 ‘잇 유 업’을 번안한 곡으로 그 당시 히트했던 유로댄스 장르를 대표하는 곡이다. 그룹 위너의 송민호가 지난해 11월 발표, 10일 넘게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한 정규 1집 ‘XX’의 타이틀곡 ‘아낙네’는 1970년대 대중가요인 ‘소양강처녀’를 재해석한 곡으로 젊은층을 소구했다.
전문가들은 대중문화의 뉴트로 열풍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사람들은 현실이 답답할수록 과거나 미래로 눈을 돌린다. 뉴트로가 인기인 이유도 경기 침체, 고용 및 주거 불안 등의 사회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를 반영하듯 스크린에서도 연말 연초부터 ‘스윙키즈’ ‘마약왕’ ‘그대 이름은 장미’ 등 복고 콘셉트의 영화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2030 세대들이 LP바를 찾으면서 LP바는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됐고, 롤러장이 데이트 코스로 뜨고 있다. 그러나 과거를 그대로 복기한다고 트렌디해지는 것은 아니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는 “뉴트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 혁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젊은층이 주도하고 있는 사회현상”이라며 “단순히 과거를 끌고 오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될 수 없다. 옛것을 현대화하는 업그레이드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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