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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지난 1일 새벽 강원도 강릉 주문진 해변. 기해년(己亥年) 새해를 맞아 해돋이를 보기 위한 인파로 북적였다. 아직 어둠 속에서 해가 떠오르지 않은 가운데 사람들 위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불꽃을 실은 여러 물체들이 먼저 떠올랐다. 소원과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불을 붙여 하늘에 날리는 풍등이었다.
지난해 10월 풍등으로 인해 큰 화재가 발생했던 경기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기름탱크(저유소) 화재 사건이 발생한 지 채 100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새해 해돋이 행사 앞두고 풍등 금지했지만 허사
강원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난 1일 새해 해돋이 행사를 앞두고 산불 예방을 위해 풍등과 폭죽 사용 금지를 시민들에게 거듭 당부했지만 허사였다. 강릉시 경포 해변과 주문진 해변 등 동해안의 주요 해변에는 ‘풍등 사용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관광객들과 상인들은 풍등을 버젓이 사고팔았다.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사흘 동안 강원도 내 풍등 관련 신고는 총 7건이 접수됐다. 지난 한 해를 통틀어 총 8건이 접수된 것과 비교해 신고 건수가 크게 늘었다.
소방기본법 12조 1항 1호에 따르면 소방서장이 화재 예방상 위험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만 풍등 등 소형 열기구 날리기가 금지 또는 제한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어기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이뿐만 아니라 산불을 내면 실수라고 할지라도 산림보호법 제53조 5항에 따라 최고 징역 3년 또는 최고 3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한다.
특히 강원도 △강릉 △고성 △동해 △양양 △삼척 △속초 6개 시·군에 지난달 13일부터 건조 특보가 발효돼 산불 발생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6개 시·군에 있는 해변들은 산들이 인접해 산불 발생 위험에 항상 노출돼있다.
지난 1일에는 오후 4시12분쯤 강원도 양양군 서면 송천리 송천떡마을 뒷산 사유림에서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해 다음 날인 2일 오후 5시까지 약 20㏊(헥타아르)의 산림이 불에 탔다. 산림당국은 현재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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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이 새로운 산불 원인으로 부각…전문가 “안일한 시민 안전의식이 대형 화재 불러”
최근 산불 발생 추이를 살펴보면 풍등이 새로운 화재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2015~2017년) 풍등 화재신고는 42건이었다. 신고 건수는 2015년 7건, 2016년 11건, 2017년 24건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중 실제 화재가 6건, 기타 예방경계 출동(자체 진화와 주민들 신고로 인한 출동)이 36건이었다.
강원도소방본부 관계자는 “풍등은 바람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가로수와 전깃줄 등에 걸리면 화재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며 “연말연시나 앞으로 있을 정월 대보름 풍등 행사를 앞두고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풍등에 대한 시민 안전의식 개선과 더불어 풍등 관련 규정의 법제화와 처벌 강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충분히 산불로 이어질 수 있는 거리임에도 풍등을 날리기 전에 ‘나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안전의식이 시민들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며 “풍등의 재질을 불연성으로 만들거나 풍등을 날리는 행위에 대해 조금 더 엄격하게 규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법이 모든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며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풍등 탓에 발생하는 화재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