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개헌 서둘러야 하는 진짜 이유

선상원 기자I 2018.07.25 06:00:01

민주화 체제라고 하지만 유신헌법 잔재 온존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 계엄해제 요건도 그대로
지선 후 야권 개헌에 적극적, 이 기회 살려야
대통령 진심 변하지 않았다면 여당도 호응해야

[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나라가 기무사령부의 계엄 문건으로 떠들썩하다. 국방부가 23일 공개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대비계획 세부자료’에는 보도검열과 언론사 등록 취소, 미국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교활동, 국회의 계엄해제 표결 대비 의원 체포 방안 등이 담겨있다. 이 문건은 작성 주체는 차치하고라도 합동참모본부가 2년 마다 수립하는 계엄절차 가이드라인인 ‘계엄실무편람’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국회 관련 내용은 충격적이다. 기무사는 현 국회는 여소야대로 의결정족수가 충족돼 계엄해제가 가능하다고 분석한 뒤 계엄해제 안건 직권상정 차단, 현행범 처리로 의결정족수 미달 유도,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정세균 전 의장 설득 및 사법처리 대책을 수립했다. 헌정질서를 무력화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고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시 공공의 질서유지를 위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계엄을 선포하면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보하고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122석에 불과했다. 야권이 계엄해제를 의결하면 막을 수 없는 구조였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기각되고 대통령이 촛불 집회에 대처하기 위해 실제 계엄을 선포했다면 어떠했을까. 당시 야권인 민주당(123석)과 국민의당(38석), 정의당(6석)의 의석이 의결정족수인 재적 과반수를 넘었지만 표결에서 이 숫자를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 조항은 1972년 1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구집권의 길을 터준 유신헌법에 처음 들어간 이래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낸 87년 체제 헌법에도 온존해 있다. 그 이전 헌법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도록 했다. 현 체제를 정치민주화를 달성한 87년 체제라고 하지만, 실상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잔재가 남아있는 체제다.

지방선거 동시 개헌은 무산됐지만, 이제라도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 개헌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 것도 기회다. 개헌논의에 소극적이었던 자유한국당이 개헌연대까지 띄우며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바른미래당은 여야 영수회담까지 제안하고 나섰다.

그런데 여당이 소극적이다. 올 하반기는 경제 민생입법에 성과를 내야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개헌을 논의하면 불필요한 정쟁을 촉발하고 정국의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국정에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이 야권의 정략을 탓해서는 개헌도 경제 민생입법도 이뤄낼 수 없다. 직접 개헌안까지 발의한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이 변하지 않았다면 여당은 개헌 논의에 나서야 한다. 야권이 개헌에 적극적인 만큼, 여야가 첨예하게 맞섰던 권력구조 문제도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하면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여야는 국민들의 여론을 존중해 대통령제를 채택하더라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정부의 과도한 예산권한과 헌법기관에 대한 대통령 인사권은 박정희 체제의 잔재다. 50년 가까이 된 헌 옷을 버리고 새 옷으로, 새 헌법으로 갈아입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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