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정리' 꿰뚫은 오바마가 구글에 지원했다면?

오현주 기자I 2017.04.26 00:15:00

'알고리즘' 관한 궁금증·오해
흔히 컴퓨터 연산 떠올려
근본은 일상 속 '정리·분류'
쇼핑·짐싸기·책장정리 등
인간능력 감소현상은 우려
………………………………
알고리즘 행성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
제바스티안 슈틸러|308쪽|와이즈베리

알고리즘을 설계·분석하는 응용수학자인 제바스티안 슈틸러는 컴퓨터나 기계에만 쓰는 것이려니 했던 알고리즘에 관한 막연한 추측을 버리라고 말한다. 알고리즘은 일상 도처에 널려 있다. 짐씨기를 비롯해 쇼핑, 서고배치 같은 단순정리부터 검색엔진, 내비게이션 같은 인터넷기반 행위는 물론이고 데이터 보안, 인공지능 같은 첨단기술까지(이미지=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유세를 다닐 때 에피소드 한 토막. 가히 기념비적인 유세장으로 그는 구글을 택했다. 직원들이 구름 같이 모여든 자리. 오바마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질문을 담당한 한 임원은 대선 유세가 마치 구글 입사지원 같다고 선방을 날렸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구글에 지원해 합격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암시였다. 그러곤 진짜 구글의 면접에나 나올 법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특정한 길이의 정수 100만개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분류할 수 있을까요?” 질문이 나오자 먼저 열광한 것은 관중이었다. 그 소란을 뚫고 차분히 내놓은 오바마의 대답은?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버블정렬은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시작입니다.”

다시 일어난 관중의 함성으로 강당이 떠나갈 듯했다. ‘버블정렬’은 알고리즘(algorithm)에서 나오는 용어. 뒤에서 앞으로 진행해나가며 인접한 두 데이터를 줄 세우는 걸 말한다. 샤워기에서 솟구치는 물거품처럼 위쪽으로 끓어오르는 상황이 연출된다고 해서 ‘버블’이라고 부른다. 오바마가 버블정렬을 안다? 누구보다 질문한 임원이 놀라서 기절할 지경. 컬럼비아대·하버드대 졸업의 이력이 꽤 인상적이지만 오바마의 경력에서 정보통신학을 배웠다는 내용은 없었다.

갑자기 오바마 유세는 왜? 때가 때이니 오바마의 대선 유세가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보이려 하느냐고? 전혀 아니다. 그와는 거리가 먼 ‘엉뚱한’ 얘기다. ‘알고리즘’이다. 오바마가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게 관심거리다. 이 일이 계기가 되든 말든 만약 오바마가 그토록 만만치 않다는 구글에 입사지원을 했다면? 아마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었을 터.

도대체 알고리즘이 뭐길래 이 소란인가. 대다수가 ‘컴퓨터와 관련 있는 무언가’로만 아는 이것을 좀더 친절하게 설명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기술할 때 쓰는 실행 명령어의 순서’쯤 된다. 명확히 정의한 한정된 개수의 규제나 명령의 집합이며 한정된 규칙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사전에 등재한 지도 얼마 안 됐다니 현대가 만든 복잡한 개념인 건 틀림없다.

그런데 이뿐인가. 알고리즘을 설계·분석하는 응용수학자인 저자가 알고리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나섰다. 알고리즘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풀기 위한 세부적이고 단계적인 방법이란 거다. 수학이나 기계에만 쓰는 것이려니 했던 추측도 버리란다. 일상 도처에 널려 있단다. 쇼핑, 짐싸기, 서고배치 같은 단순정리부터 검색엔진, 내비게이션 같은 인터넷기반 행위는 물론이고 데이터 보안, 인공지능 같은 첨단기술까지.

책은 그간 알고리즘이란 말에 기가 죽거나 지레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대중을 위해 쉽고 왜곡 없이 내보인 알고리즘의 ‘신세계’다. 저자는 이를 위해 특별히 ‘7일간의 여행’이란 프로그램까지 고안했다. ‘알고리즘 행성’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열정 가이드를 한다.

▲1000쪽 깨알 정보에서 그 이름 찾는 법

지금이야 거의 사라졌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두껍고 방대한 책이 있었다. 전화번호부다. 1000쪽을 넘기는 건 보통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않은가. 누구나 그 엄청난 데이터 안에서 ‘홍길동’을 찾고 ‘이몽룡’을 찾아낸다. 앞부터 일일이 보는 것도 아니고 하루 온종일 걸리는 것도 아니다. 손가락 몇 번만 까딱하면 줄줄이 명단이 걸려나온다. 저자가 말하는 알고리즘이 바로 이거다. 손가락의 규칙. 물론 컴퓨터와 만나면서 빛의 속도까지 얻게 된 거고. 스마트폰이어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왼손에 쥔 1000명의 번호에서 오른손은 순식간에 그 이름을 찾는다.

그렇다고 개개인의 인력, 자원·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덜 번거로운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고민이 성능을 높였다. 데이터의 다양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복잡성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저자의 논지대로라면 알고리즘이란 건 정말 별게 아니다. ‘정리’고 ‘분류’니까.

오바마의 구글 유세현장으로 되돌아가 보자. 구글이라서 그랬을 수는 있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핵심은 이 인터뷰에서 오간 내용을 사람들이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에 있다. 다시 말해 그렇게 환호할 일인가 말이다. 사실 알고리즘의 근본을 묻는 질문에 오바마가 대단한 답을 낼 거란 기대는 없었을 거다. 그런데 오바마가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는 또 뭔가. 슈퍼울트라맨처럼 지구공을 꽉 잡은 그가 ‘책장정리’를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을 거라고?

▲‘게으름의 예술’…알고리즘은 죄가 없다

알고리즘의 강점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원활히 다룰 수 있다는 거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인풋’이다. 어떤 데이터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빠져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게으름의 예술작품’이란 닉네임을 알고리즘에 선물한다. 미학적으로 별 의미없는 원칙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아웃풋이 나오는데 그게 “예술!”이란다.

문제도 역시 ‘인풋’이다. 올바른 데이터를 입력해야 제대로 기능하니까. 지도가 그렇다. 도로와 지명, 산과 강을 충실하게 내보일 뿐 길 안내까진 하지 못한다. 지도 위에서 본격적으로 길 찾기를 하는 건 알고리즘에 순응한 내비게이션. 최단길, 막히는 길, 안전길 등. 하지만 지도 자체가 틀렸다면 모두가 ‘꽝’이다. 그러니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인간의 몫이다. 알고리즘은 죄가 없다.

그래도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저자는 알고리즘적 확산이 인간의 능력감소로 이어지는 현상을 걱정한다. 스마트폰의 똘똘함에 기대어 외우는 전화번호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까 말까 하는 것 말이다. 알고리즘의 초능력도 슬슬 불안하다. 미래의 언젠가 알고리즘이 덜컥 인간을 대신하는 거 아니야?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은 주체, 알고리즘은 수단일 뿐이라고. 복잡한 문제·관계 속 숨은 원칙을 찾는 ‘알고리즘적 시각’으로 인간이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합의해 ‘알고리즘의 기준’을 만들면 된다고.

과연 그럴까. 인간 알렉산더대왕은 고르디우스 매듭을 그냥 칼로 끊어버렸다. 대단한 지혜라고 후대는 치켜세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가 실타래를 풀어낸 건 아니다. 알고리즘이라면? 기어이 해결했을 거다. 알고리즘은 칼을 못 쓴다. 인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저자의 장밋빛 전망은 이 둘이 합쳐 기가 막힌 하모니를 이룬다는 건데. 글쎄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