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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추위 속에 지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에는 역대 최대인 주최 측 추산 150만명(연인원)이 운집했다. 부산과 광주·대구 등 전국 60곳의 40만명을 포함해 총 190만명(경찰 추산 33만명)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비선 실세’ 최순실(60·구속기소)씨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촛불은 서울 광화문 광장을 넘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지난달 29일 첫 주말 촛불집회부터 5차까지 총 409만명(경찰 추산 92만 3500명)이 어둠을 밝히기 위한 촛불 행렬에 동참했다.
◇대학가 시국회의에서 사회 전방위로 확산…시민 불복종운동으로
국정농단 사태 진상규명을 위한 대학가의 시국선언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문화예술계·종교계 등 사회 전방위로 시국선언이 확산하면서 이달 5일 20만명이던 촛불 행렬은 지난 26일 5차 촛불집회에서 전국 190만명의 ‘촛불 바다’로 변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서울대 교수 100여명이 지난 1960년 4·19혁명 이후 56년 만에 처음으로 집회에 참여해 ‘박근혜 퇴진’ 등 구호를 외쳤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분노는 대통령 퇴진 압박으로 이어졌다. 두 차례(10월 25일·11월 4일)에 걸친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거짓과 책임 회피 등으로 드러나자 성난 민심은 사그라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졌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부적절한 발언과 검찰 조사에도 불응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촛불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시민들은 그러나 ‘불통(不通) 청와대’를 향한 분노를 풍자와 해학으로 승화시키며 비폭력·평화 집회 기조를 이어갔다. 지난 26일 최대 인파가 청와대 인근 200m 지점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까지 행진했지만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 등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민심에 눈과 귀를 닫은 채 ‘현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자진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정치권은 조만간 탄핵 정국으로 돌입할 예정이어서 즉각 퇴진을 바라는 ‘거리의 민심’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될 가능성높다.
◇대통령 퇴진 넘어 헌정질서 회복과 체제개혁 모색해야
촛불집회를 주최해 온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측은 촛불의 동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퇴진행동 관계자는 “5차 촛불집회 보다 더 많은 인원들이 모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이 정국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집회의 구체적인 전략과 행진 방식 등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주최 측은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 탓에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동시 경적 울리기 △동시 소등 △박근혜정권 퇴진 조기(弔旗)걸기 △집집마다 퇴진 현수막 게시 등 많은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민저항운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각계에서는 광장의 촛불이 박 대통령 한 사람의 퇴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민심에는 새로운 경제·사회 체제를 만들자는 열망이 함께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통령 퇴진을 넘어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촛불 시민’은 개헌이 아니라 헌정 회복을 외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광장의 외침이 제도권 영역인 ‘탄핵’ 문제로 옮아가면서 ‘촛불 민심’의 체력 고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일상 곳곳에서 노란 리본의 물결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광장의 정치가 일상의 정치, 일상의 촛불로 변화할 것”이라며 “제도권의 고질적 병폐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이 시국을 상징할 상징물을 만들어 끊임없이 기억하게 만드는 전략을 세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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