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는 주문을 받고 배달한 화환이 전달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수취인이 화환을 거부한 것이다. 전달되지 않은 제품에 대해 고객에게 값을 요구할 수 없었고 결국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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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얼마 전 가게에서 꽃바구니 등을 만들어 주는 김 씨에게 더는 일을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화원을 운영하는 데 인건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감을 줄 수 없게 됐다.
김 대표가 보여준 냉동 창고안에는 차가운 한기 속에 배달되지 못한 화환이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다시 돌려보낸 화환, 배달도 되기 전에 취소된 화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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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우리 삶이 이렇게 힘들어졌지만 정부와 국민은 우리에게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더 참담하다”며 “온갖 부정부패에 이골이 난 국민은 김영란법에 환호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우리의 힘든 삶이 전해지더라도 ‘대의를 위해 소는 희생해야 한다’는 국민의 반응이 무섭다”고 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만 하더라도 온 국민이 어려움을 서로 이해하고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런 국민의 이해와 공감 덕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1970년 월남전에 참전한 참전용사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전장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하지만 정작 정부는 나라를 위해 몸바친 국민의 호소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몇 차례 정부에 구제 방안을 협회 차원으로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추후에 문제점이 생기면 그때 고치겠다는 답뿐이었다”고 아쉬워했다.
김 대표는 “이미 문제는 시작됐다. 오늘도 많은 화훼업계 종사자들이 수십 년간 함께 일해 온 직원들과 작별하고 삶의 터전인 사업장의 문을 닫고 있다”며 “부정부패를 없앤다는 김영란법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구제대책이라도 마련하고 시행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이렇게 늘어놓은 푸념이 국민과 정부의 관심을 돌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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