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영호남 지역주의의 ‘철옹성’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일까. 7·30 재보궐선거에서 영남 선거구에서는 야권이, 호남 선거구에서는 여권이 각각 이전 선거들과 비교해 더 선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더이상 투표용지의 ‘기호’만 보고 선택 받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4% 송철호, 울산서도 ‘지역주의 타파’
2일 이데일리가 6·4 지방선거 등 지난 선거들과 이번 7·30 재보선에서 여야가 얻은 득표율을 비교 분석한 결과, 울산 남구을 재보선에 출마한 송철호 무소속 후보(44.2%)는 지난 2000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 이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서 4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송 후보는 이번에 3선 울산시장 출신의 거물 지역행정가인 박맹우 의원(55.8%)에 11.6%포인트 차이로 졌다. 지난 지선에서 여야가 각각 67.9%, 26.3%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그 격차가 30%포인트가량 좁혀진 것이다. 지난 18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이 지역의 여야간 득표율 차이는 23%포인트가 넘었다.
정치권에서는 울산 남을의 재보선 결과가 전남 순천·곡성에 못지않은 지역주의 타파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순천·곡성발(發) ‘선거 혁명’을 이룬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에 가려져있지만, 송 후보의 득표율도 ‘작은 혁명’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울산 남을 정도는 아니지만, 또다른 영남 지역구인 부산 해운대·기장갑도 심상치않은 민심의 변화가 읽힌다. 윤준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이 지역구에서 34.4%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예상보다 높았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순천·곡성 외에 울산 남을에 무소속으로 나온 송철호 후보가 40% 이상 득표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부산 해운대·기장갑의 득표율도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면서 “전통적인 지역주의의 벽이 깨질 수 있는 징조”라고 분석했다.
◇이정현 ‘개인기’ 외에 지역변화도 한몫
호남은 이번 재보선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곡성)은 1988년 소선구제 도입 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전남에서 이긴 새누리당 의원이 됐다.
가상준 단국대 정외과 교수는 “이 의원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과거 정치공학적 선거에서는 호남에서 30% 이상의 득표율은 엄두도 못내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개인기’도 있었지만 지역민심의 변화 자체도 큰 요인이었다는 분석이다.
순천·곡성 외에도 호남은 지역주의 타파의 가능성을 보였다. △광주 광산을(3.5%→7%) △전남 나주·화순(8.2%→22.2%)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9.1%→18.7%) 등에서 많게는 14%포인트 정도 여권의 득표율이 올라갔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4개 선거구에서 함께 상승하는 것은 일정한 방향성을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특히 광주 광산을을 주목할 만하다. 권은희 새정치연합 후보가 60.6%의 지지율로 무난히 당선되긴 했지만, 이번 15개 선거구 가운데 가장 낮은 22.3%의 투표율을 기록해서다. 새정치연합의 전략공천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내영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새정치연합이 호남에서도 신뢰를 잃은 민심의 변화가 극명하게 보여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광주 광산을 유권자들은 또다른 야권인 장원섭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26.4%의 지지를 보내, 어떤 식으로든 텃밭을 지켜왔던 제1야당의 ‘대안세력’에 대한 요구를 표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