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에서 매파(긴축 선호)적 통화정책 결정권자로 통하는 요아킴 나겔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는 지난달 30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6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일시적인 물가하락에 “게걸스런 짐승과 같은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한다”며 지속적인 긴축을 강조한 것과 비교하면 발언이 180도 바뀐 것이다.
유로존 경제대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둔화하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의 조기 금리인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월 조기 금리인하 가능성을 일축한 가운데 ECB가 먼저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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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현지시간)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1월 독일의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9%로 전월(3.7%) 보다 떨어졌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에 부합하는 수준이다. 탄소세 신규 도입에도 에너지 물가가 2.8% 하락하며 CPI 상승률 둔화를 이끌었다는 게 독일통계청의 분석이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도 직전 달 3.5%에서 3.4%로 소폭 떨어졌다. 프랑스 인플레이션도 둔화했다. 1월 CPI는 전월보다 0.2% 하락하며 시장 예상치(0.1% 상승)를 하회했다.
유로존도 1월 인플레이션 둔화가 확인되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 당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1월 유로존의 CPI는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2.9%로 반등 것과 비교하면 둔화됐다. 다만 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 2.7%에 견줘서는 살짝 높은 수준이다. 1월 CPI는 전월과 비교해선 0.4% 하락했다.
유로존의 CPI가 둔화세를 보이면서 ECB가 이르면 4월부터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유로존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독일이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이 둔화한 만큼 ECB의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인 앤드류 커닝햄은 “오는 3월 ECB 회의 전에 아직 확인해야 인플레 지표가 하나 더 있지만 1월 독일 지표로 첫 금리 인하 시기는 4월이라는 전망에 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물가 둔화 증거 더 나와야”
ECB 위원 일부는 금리인하가 머지않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리오 센테노 포르투갈 중앙은행 총재 등 ECB 위원 일부는 4월까지 금리인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확보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센테노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증거가 이미 많이 있다”며 “인플레이션 궤적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5월 임금 데이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ECB는 여전히 조기 금리인하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금리인하 전까지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로 내려오고 있다는 증거가 더 나와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나겔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길들여지고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금리인하를 지지하는 데는 한참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그는 “ECB의 현재 정책 기조가 그다지 제한적이지 않다”며 “금리인하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를 계속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30일 CNN 방송 인터뷰에서 아직 인플레이션율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라가르드 총재는 “다음 움직임은 금리 인하가 되겠지만 인하 전에 디스플레이션(물가 하락)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3월 금리인하 기대감이 꺾인 가운데 5월 이후에나 피벗(통화정책 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성장세가 예상보다 강해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웰스파고는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긴축 편향은 제거했지만, 금리 인하에 더 강한 신뢰가 필요하다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5월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3월 금리 인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5월 회의 전까지 3건의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PCE) 추세를 지켜본 뒤 연준이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