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죄를 짓지 말던가" [검찰 왜그래]

이배운 기자I 2023.05.13 10:10:10

尹정권 1년 ''유능한 일처리'' 보여준 검찰
이제는 ''공정한 일처리'' 국민신뢰 얻어야

검찰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정무실장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럼 죄를 짓지 말던가!”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지난해 10월,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검찰의 수사가 ‘정치보복’ ‘야당탄압’이라고 반발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한 여당 의원은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고성이 난무하는 혼돈의 도가니에서 홧김에 내놓은 말이겠지만, 지난 1년 검찰의 행보를 가장 잘 함축한 한마디로 꼽을만합니다.

윤석열 정권 출범 후 검찰은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냈습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수사권이 반토막 난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까지 통과되면서 조직의 위상을 완전히 상실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검찰은 권력형비리의혹 수사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유력 대권 주자였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매주 법원에 드나드는 신세가 됐고,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기소됐습니다. 전 당대표인 송영길도 검찰 소환이 임박했고 현역 민주당 의원 10명 이상이 그 뒤를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 주어진 할 일 할 뿐인데…‘돌 던지는 자 누구인가’

굵직한 비리 의혹이 터질 때마다 야당 의원들은 “부당한 정치보복 수사”라고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그때마다 검찰은 “제기된 의혹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뿐” 이라고 받아쳤습니다. 이 말을 솔직하게 풀이하면 “그럼 죄를 짓지 말던가” 입니다. 조금 더 쉽게 고쳐보면 “그러니까 처음부터 책잡힐 짓을 하지 말았어야죠” 정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검찰 출신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종종 같은 논리를 구사하며 검찰을 지원사격했습니다. 최근 ‘60억 코인’ 의혹에 휘말린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한동훈 검찰의 작품이다, 얄팍한 술수”라고 반발했고 이에 한 장관은 “누구도 코인을 사라고 한 적 없다”고 쏘아붙였습니다. 수사기관은 본업에 따라 제기된 의혹을 들여다볼 뿐이니, 이것이 불만이면 처음부터 책잡힐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재명 당대표 집중수사를 비난하는 여론엔 “이 대표 범죄 혐의가 많은 게 검찰 탓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고, 추미애 전 장관의 ‘마약 정치 그만하고 여의도에서 정치하라’는 비판에는 “마약 잡겠다는데 정치가 왜 나오나”라고 응수했습니다. 날뛰는 마약범죄에 몽둥이를 든 건 당연한 것이니, 불필요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반박입니다.

◇ ‘유능한 수사’ 존재가치 증명했지만…‘공정한 수사’ 신뢰회복 당면과제

이처럼 검찰은 야권의 날 선 공세 속에서도 ‘할 일을 한다’는 원칙론을 방패로 꿋꿋하게 수사를 계속했고 성과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검찰 수사권 축소 논의는 자취를 감췄고, 오히려 검찰의 위상과 권한은 높아졌습니다. 이런 검찰의 행보가 언짢은 이들도 “그럼 죄를 짓지 말든가”에 응수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발언만 놓고 보면 지당한 원칙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원칙론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야권 쪽 비리만 파헤치는 듯한 불균형한 행보와 지지부진하게 느껴지는 김건희 여사 의혹 수사는 매번 검찰의 공정성을 의심케 합니다. 주어진 할 일을 할 뿐이라는 당연한 방어논리에도 씁쓸한 뒷맛이 남는 이유입니다.

여론 일각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한 듯 최근 검찰 관계자는 “김 여사 출석 등을 포함해 수사방식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이라며 “증거와 법리에 따라 결과를 도출하겠다, 지켜봐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어떤 결과를 내놓든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온 국민이 충분히 수긍하는 이유를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직후, 한바탕 물갈이 인사를 벌이고 쉴 틈 없이 달려온 검찰입니다. 지난 한 해는 거침없는 수사로 국민에게 ‘검찰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했다면, 올 한해는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일한다’는 신뢰를 얻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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