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증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여야가 그제 국회에서 서로 따로 개최한 국가재정 관련 토론회에서 똑같이 나온 얘기다. 정부의 분배·복지 정책이 확대되면서 갈수록 늘어나는 재정수요에 대응하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건전성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을망정 나라 살림이 급증하는 추세에 따라 증세를 통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일치를 이룬 셈이다. 특히 최근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3차례나 추경이 편성되는 등 재정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이다.
주목되는 것은 조세 분야 싱크탱크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전·현직 원장까지 증세론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조제재정연구원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는 김유찬 현 원장이,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실과 여의도연구원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는 박형수 전 원장이 발표자로 나서 증세론을 펼쳤다. 이에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브리핑에서 “재정지출 확대 수요가 있는 만큼 그에 맞춰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며 증세론을 제기한 바 있다.
이 기회에 ‘보편적 증세’를 확대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동안 ‘부자 증세’가 논의의 초점이었으나 일부 계층의 부담만으로는 급증하는 재정 수요를 감당하기에 한계가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근로자 중에서 근로세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 비율이 38.9%에 이를 정도로 면세자 비율이 높은 것은 과세형평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가 최근 보고서에서 재분배 정책 강화를 위해 보편적 증세의 필요성을 거론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문제는 정부가 증세 필요성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금 시점에서 증세 논의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증세를 하지 않고 세출 구조조정으로 재정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여당 내에서도 증세론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덮어두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다. 국민에게 지금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세금을 더 걷는다면 가급적 ‘보편적 증세’ 차원에서 방안을 강구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