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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은 1995년 3월 15일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로 출발해 2000년 `안철수연구소`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2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의지 아래 지금의 안랩으로 다시 바꿨다. 창업자로서 10년간 회사를 키워오다 2005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며 남긴 안철수 전 대표의 말처럼 0.1%도 안 되는 벤처기업의 생존확률을 뚫고 살아남아 국내 보안업계를 이끄는 `큰형님`으로 자리매김했다. SK인포섹·시큐아이와 함께 국내 보안업계 `빅3`로 꼽히지만, 나머지 두 기업이 대기업 계열인 것을 감안하면 1세대 보안업체 중 유일하게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위기를 기회로` 기술력 검증…백신 무료 배포로 이미지↑
안랩은 국가적인 사이버공격이 있을 때마다 백신을 개발해 무료 배포에 나서는 등 위기를 함께 극복하면서 회사의 기술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널리 각인시켰다. 지난 1999년 4월 전국의 PC 30만대를 일시에 초토화시킨 `CIH 바이러스` 사태 때,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는 사고 발생 전에 언론을 통해 CIH 바이러스에 대해 경고했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사고 이후에 대기업과 관공서, 군부대 등에서 복구를 위해 회사를 찾아왔고 전화가 마비될 정도로 문의가 몰렸다. 몇주에 걸쳐 피해 PC 복구에 최선을 다했고, 이를 계기로 이메일 외에 휴대폰 문자서비스 등으로 긴급상황 발생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2009년과 2011년에 걸친 두 번의 디도스(DDoS) 대란에 안철수연수소는 전사적인 비상대응 체제를 가동해 디도스 공격을 유발하는 악성코드의 전용백신을 개발해 무료 제공했다. 2009년 7월 일본 출장 중 급거 귀국한 김홍선 4대 CEO를 중심으로 500여명의 전직원이 밤샘 근무를 하며 백신 개발에 총력을 다했고, 2011년에 3월에도 안랩시큐리티대응센터(ASEC)·CERT(침해대응)·보안관제팀·네트워크지원팀과 솔루션지원팀 등 모든 부서가 협력해 전방위 대응체제를 마련했다.
여러 번의 국가적인 사이버 위기에 대응하며 백신 제품의 기술력을 입증한 안랩은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창업자 안철수 전 대표가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이끌기 시작하는 시기와도 일치한다. 2~5대 CEO를 거치면서 안랩은 백신 제품 외에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을 출시하고, 보안관제 자회사 안랩코코넛을 흡수합병하며 종합 보안기업으로의 토대를 마련했다. 홍콩·대만·베트남·유럽 등 해외 진출과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확장 전략이 주효하면서 2012년 보안업계 최초 매출액 1000억원을 넘어섰다.
◇2020년 R&D에 방점…“차세대 융합보안 기술로 미래먹거리 마련”
안랩은 지난해 `N.EX.T 무브 안랩 4.0`의 경영방침을 세우며 차세대 기술 역량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올해 강석균 6대 CEO를 새 사령탑으로 내정하면서 사내 연구개발인력을 모두 연구소 조직 내로 통합하는 연구개발(R&D) 중심의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지난 25년간 백신과 네트워크, 보안관제 등의 서비스를 통해 종합 보안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면, 앞으로의 25년을 이끌어줄 새로운 보안기술 개발에 방점을 찍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안랩은 지난 2011년 이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을 항상 20% 이상으로 유지해 왔다.
특히 차세대 융합보안 역량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차세대 융합보안 기술을 스마트 공장, 스마트 시티,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군과 접목해 보안사업의 영역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신임 연구소장으로 영입된 전성학 소장은 향후 연구소 운영 계획에 대해 “자동화 분석, 머신러닝 기반의 위협 분석과 대응을 안정화하고 특화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안랩은 올해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등을 현재 제품 및 서비스에 적용, 솔루션 고도화를 위한 ‘혁신과제’와 위협정보(TI), 클라우드 보안, 운영기술(OT) 보안, 블록체인 등에 대한 준비를 위한 ‘도전과제’에 집중하고 있다. 머신러닝 기반의 신규 보안위협 대응·분석 플랫폼을 올 상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며, 클라우드 워크로드 보안 솔루션도 연내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창업주 `안철수 그늘`은 여전히 부담…회사 내부서도 볼멘소리
안 전 대표가 CEO 자리에서 물러난지 15년이 됐지만, 안랩은 10여년째 `안철수 테마주`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안랩의 지분 18.57%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율은 28.57%에 달한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005년 대표직을 사임하고 2012년에는 사내이사에서도 물러났지만,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에도 안랩 주가는 안 전 대표의 행보에 따라 요동쳤다. 새해 첫 거래일인 지난 1월 2일 안 전 대표의 정계 복귀 선언에 23% 넘게 급등하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고, 코로나19 여파로 주식시장이 휘청이던 지난 2일에도 안랩은 안 전 대표의 대구 의료 봉사활동에 힘입어 12% 가까이 올랐다.
회사 입장에서는 기업가치와 무관하게 주가가 움직이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안 전 대표는 회사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내부에서는 `안 전 대표가 안랩을 위해 지분을 정리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워낙 정치적 이슈에 따라 주가가 출렁이다 보니 안랩은 보안업계 대장주임에도 제대로 된 증권사 리포트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는 4월 총선 결과에 안랩 주가의 변동성이 커질 뿐만 아니라 다음 대선때까지도 또다시 급등락을 반복할 것”이라며 “안철수 전 대표의 그늘에서 안랩이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