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는 요즘 부쩍 개인투자자들의 민원 전화를 많이 받습니다. 작년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매도 사태로 불붙었던 공매도 불만이 이제는 메릴린치의 초단타 매매로 옮겨붙은 모양입니다. 특히 이달 중순 거래소가 ‘초단타 매매’를 수탁한 메릴린치 서울지점을 제재할 예정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온 이후로는 민원 전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은 “최근에 초단타 매매 사례가 처벌을 받았다고 하는데 왜 메릴린치는 처벌을 하지 않느냐, 외국계라서 그러냐, 7월 언제쯤 제재가 나오냐, 누가 봐도 시장 교란인데 초단타 매매가 문제가 안되는 거냐, 코스닥 개인투자자들을 무시한다”고 항의합니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특정 종목 매수 상위에 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가 뜨면 개인투자자들은 외국인 매수세가 몰린다고 생각해 해당 종목을 추종 매수했고 그로 인해 주가가 오르면 메릴린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빠르게 매도 상위로 갈아타곤 했었죠. 2017년 하반기부터 1년여간의 일입니다. 답답한 개인투자자들은 작년 8월 메릴린치를 ‘멸치’, ‘며르치’라고 폄하하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조사를 요구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거래소가 해당 사건을 조사했고 메릴린치 뒤에는 미국 시타델 증권의 알고리즘 매매가 있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메릴린치 서울지점은 시타델 증권의 매매를 수탁 처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에 알려진 것처럼 ‘초단타 매매’가 문제는 아닙니다. 초단타 매매를 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시타델 증권의 알고리즘 매매에 ‘허수 매매’가 섞여 있었는데 수탁자인 메릴린치 서울지점이 이를 알고도 걸러내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시장감시규정 제4조1항5호에는 거래 성립 가능성이 희박한 호가를 대량 제출하거나 반복 정정, 취소해 시세 등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 즉 ‘허수성 호가’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같은 조항에 따라 수탁자인 메릴린치 서울지점은 이런 행위를 위탁자(시타델 증권)에게 권유하거나 그 거래를 위탁받아서는 안 됩니다.
거래소는 시타델 증권을 직접 처벌할 수 없고 거래소 회원인 메릴린치 서울지점에 대해 제재금만 매길 수 있습니다. 거래소가 시타델 증권의 알고리즘 매매가 시세 조정이나 시장 교란을 일으켰다고 판단한다면 이 조사 내역을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으로 넘기게 됩니다.
거래소 관계자는 “개인투자자들이 초단타 매매로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 상실감은 이해되지만 초단타 매매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언론 보도로 메릴린치가 ‘초단타 매매로 제재를 받는다’는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거래소는 난감한 입장입니다. 최근 증권선물위원회가 초단타 매매를 제재했다는 것도 사실은 초단타 매매가 아닌 그 과정에서 일어난 ‘시장질서 교란 행위’가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제재 규정도 없는 ‘초단타 매매’를 단죄하기 위해 시장감시위원회 회의를 세 차례나 열었는데도 결론을 못 낸 것은 아닌 거죠. 거래소는 다음 달 중순경 시감위 회의를 열고 메릴린치 제재를 최종 결정합니다. 그때는 몇 억 원의 제재금이 문제가 아니겠죠. 허수 매매가 낀 알고리즘 매매를 제재한 첫 사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타델 증권과 메릴린치 서울지점이 시장교란 또는 시세조정으로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도 밝혀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