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물벼락 갑질’의 장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어제 경찰에 소환돼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광고업체 직원들에게 종이컵에 든 음료를 뿌린 안하무인의 태도가 화근이 됐다. 그러나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심려를 끼쳐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답변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국민들의 가슴에 공분을 불러일으키고도 그 정도로 진정성을 믿어 달라는 뜻이었을까.
재벌 2~3세의 치기 어린 일탈로 치부됐을 법한 일이 이처럼 초대형 사건으로 비화한 데는 조 전 전무뿐 아니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천박한 처신 탓이 크다. 조 전 전무가 대(對)국민 사과를 미적댄 게 “사과해 봤자 소용없다. 변호사 통해 대응해야 한다”는 내부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이미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빚고도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여기에 관세청이 조 회장의 부인과 두 자매를 소환하겠다며 증거 수집에 나선 마당이다. 굴지의 총수 일가가 계열사를 통해 명품 핸드백과 의류, 가구에 식자재까지 몰래 들여온 게 사실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조 회장 본인과 그의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도 역시 갑질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증언도 들려온다. 오죽하면 대한항공 직원들이 총수 일가의 퇴진촉구 촛불집회 움직임까지 보여주고 있겠는가.
조 전 전무에겐 폭행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됐고 수사 결과에 따라 특수폭행혐의가 추가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실정법만으로 따질 수 없는 재벌 총수 일가의 횡포다. 얼마 되지도 않는 지분을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두르면서 자질이 떨어지는 부인과 자녀들을 두루 요직에 앉힌 것은 분명 잘못이다. 결국 사회적 신분에 걸맞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 이른 데는 정부 관련부처들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관세청은 말할 것도 없고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 고용노동부 등이 감독을 제대로 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담당 직원들이 청탁이나 하면서 콩고물을 챙겼는지 명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돈이 많다고 저절로 ‘존경받는 부자’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