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성장기에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행복한 세대’로서 자라나는 세대들이 희망을 잃지 않게 하려면 어떤 사회적 합의나 결단이 필요하다는 누군가의 말에 참석자 대부분이 공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온 아이디어중 하나가 연금피크제였다고 한다. 100세 시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고령화사회가 눈앞에 닥친 만큼 소비활동이 둔화되는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연금수령액을 낮춰 받는 게 어떻겠냐는 ‘혁명적인 제안’이었다.
듣는 순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엔 너무 과격한 주장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더불어 살아 보려는’ 고민의 흔적이 느껴져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성장의 정체가 기정사실화돼가는 현실에서 이렇게라도 양보하지 않는다면 기득권을 확보하지 못한 계층이나 세대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몰릴 게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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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지난달 대국민담화에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연내도입’ 의지를 밝힌 이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 여당과 정부 실세들이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 덕분에 제법 성과도 나오고 있다. 8월말 현재 30대그룹 계열사의 절반이상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316개 공공기관중 100곳 넘게 임금피크제를 도입키로 했다. 은행도 일부 외국계·지방 은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임금피크제 도입작업을 마무리했다. 공기업 경영평가와 임금인상에 반영하겠다는 정부 방침으로 인해 강압적인 추진 논란이 있고 노동계와 야권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이런 추세는 이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
다만 정책 추진의 주체라 할 수 있는 공무원집단이 쏙 빠져 있는 점은 마음에 걸린다. 정부는 이미 공무원 정년이 60세까지로 확대돼 운영되는 상황에서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과 같은 논리로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공무원 연금 개혁에 따른 피로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非)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들도 내년부터는 정년 60세 의무화 대상이다. 공무원 연금개혁은 재정의 건전성 말고도 수혜폭이 지나치게 컸다는 게 중론이다. 공직(公職)이 취업선호도에서 매번 최상위권에 있을 만큼 여전히 사회구조상 ‘누리는’ 위치에 있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함석헌 선생은 우리 사회의 혁명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기 자신은 혁명하지 않은 채 사회의 혁명을 부르짖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화에 기여하며 많은 정치적 유산을 확보했던 386· 486그룹이 현실 정치에서 기대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한 것도 ‘스스로에 대한 혁명’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임금피크제는 저성장, 고령화, 고학력 등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불가피하게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다. 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에게 대승적인 양보를 주문하면서 공무원만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를 고집한다면 과연 이치에 맞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