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의 주역들이 만났다. 오는 주말 한국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3년 만에 팀을 재결합해 내한한 영화 <원스>의 주인공, 그룹 '
스웰시즌'의 멤버
글렌 한사드,
마르게타 이글로바와 현재 뮤지컬 <원스>에서 '가이'로 출연 중인
윤도현의 반가운 만남이 성사되었다.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진짜 만나게 될지 몰랐다."며 자신의 사인 앨범을 선물로 준비해온 윤도현과 그에게 반가운 얼굴로 악수를 건넨 스웰시즌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사이처럼 금세 친근함이 가득하다. 뮤지션으로 저마다 고유의 길을 걷고 있으며 또 <원스>라는 공통 분모로 소통의 다리가 하나 더 놓여진 이들의 대화는 경계 없이 영화, 뮤지컬, 음악을 넘나들었다. 깜짝 선물의 맛을 좀 뺄 수도 있겠지만, 이날 이들의 교감은 이번 한국 스웰시즌 콘서트 중 윤도현의 출연으로까지 이어질 것도 같다.
뮤지컬 <원스> 처음엔 반대했어
브로드웨이 뮤지컬 형식 따르지 않아 성공적, 배우들도 자부심 느껴 Q. 뮤지컬 <원스>가 비영어권에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공연 중이다. 스웰시즌은 뮤지컬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는데, 흥행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었는가.
글렌 한사드(이하
글렌): 처음에는 뮤지컬로 만드는 것 자체에 반대했었다. 뮤지컬로 제작하려고 우리 영화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처음에 뮤지컬 장르에 대해 보여주기 위해 브로드웨이 뮤지컬 티켓을 준 적이 있었는데, 가서 봤더니 너무 싫었다. (웃음) 영화 <원스>는 굉장히 은은하고 섬세한 부분이 있고 그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굉장히 섬세하게 보여지는 장면이 많은데 그게 무대 위 노래로 제대로 표현될 수 있을까, 감성적인 노래는 무대에서 그 감정이 극대화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레너드 코헨의 노래를 톰 존스가 부른다고 생각해 봐라. 물론 톰 존스는 훌륭한 가수이지만(웃음) 어쨌든 그럴 경우 원곡이 가진 감성이 똑같이 전달될 수는 없지 않나.
마르게타 이글로바(이하
마르게타): 화려한 조명에 역동적인 안무가 많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형식이 개인적으로 우리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뮤지컬 <원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형식을 따라가지 않고 영화에서 보여줬던 특징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것 같다.
윤도현(이하
도현): 디테일을 놓치면 그 어떤 뮤지컬보다 극에 지장을 주는 작품이 <원스>다. 특별한 장치 없이 소박한 세트에서 대사 하나, 가사 하나에 감정을 실어 이야기를 밀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른 작품보다 더 긴장하게 되는 것 같다. 배우들 모두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지금은 다른 쇼 뮤지컬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글렌: 누가 연출을 하고 극작을 할 것인지 초반엔 굉장히 깐깐하게 굴기도 했다. 그런데 존 티파니는 한 번도 뮤지컬을 연출하지 않은 사람이라 너무 좋았고, 앤다 월쉬는 극작이 굉장히 어둡지만 정말 잘 쓰는 작가이면서 또 아일랜드 사람이라 아일랜드의 느낌을 딱 알고 있었다. 무대 디자이너, 안무가 등 뮤지컬 제작진들이 모두 오버해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도 좋았다. 무대 크루가 따로 없이 배우들이 모든 것을 직접 한다는 것도 굉장히 좋았고, 무대 배경인 바(bar)는 관객들이 매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뮤지컬에서 가장 좋았던 건 관객들이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인데, 그렇기 때문에 무대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더블린의 거리로 변신할 수 있었다.
Q. 뮤지컬에 직접 출연할 생각은 없었는가?
마르게타: 처음에 그런 제안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땐 <원스>가 아닌 다른 쪽으로 건너가서 각자의 다른 삶을 살고 있던 때라 새로운 것을 하는 데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원스> 안에 갇혀서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글렌: 4년 전 쯤에 스웰시즌 투어 공연을 하면서 마르게타가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에 잠시 쉬면서 서로의 길을 가자고 했었다. 정말 신기한 건 뮤지컬로 만들어진 후 런던, 뉴욕, 또 한국까지 한번 우리 손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원스>의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삶이 이젠 윤도현에게로 갔다. 우리가 와서 노래하는 것도 너무 좋지만, 지금 뮤지컬 무대에 서고 있는 윤도현을 통해 <원스>의 생명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성공한 것을 계속 반복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
왜 음악을 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은 소중한 시간 Q. 스웰시즌 이후 각자 개인 활동에 집중했다. 어떤 것들을 해 왔으며 그 과정과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글렌: 삶에서 노래가 나오기 때문에 노래가 그간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존 티파니가 " '폴링 슬로울리' 같은 다른 곡을 써 보는 게 어때?"라고 말했는데 "왜? 그 노래는 이미 잘 됐고, 그럼 그걸로 끝난 거야."라고 말했다. 한 노래가 성공했다고 그걸 계속 반복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마르게타와 함께 곡을 썼을 때와 마찬가지로 난 항상 내 삶의 기본이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노래를 쓰고 있다. 정말 스스로에게 진정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조금 더 삶의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웰시즌 노래가 따로 있고 더프레임즈(글렌이 속해있는 밴드) 노래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단지 '노래'가 있을 뿐이다.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르게타: 글렌과 윤도현은 '난 꼭 음악을 할거야'라는 강한 의지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난 아주 자연스럽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 항상 음악이 곁에 있었고 <원스>라는 고마운 존재도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스웰시즌의 일부로서 한두 소절의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했을 때도 굉장히 그걸 즐겼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곡을 쓰고 편곡하는지 굉장히 많이 배우게 되었다. 솔로 활동을 하면서 더 많은 곡을 쓰기 시작했고 곡을 쓰려는 노력도 커졌다. 그러면서 스스로 더 성장하게 됐고, 또 투어 공연을 하면서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들도 발견하게 되었다. 언제까지 음악을 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나에게 음악은 많은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고, 또 그들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걸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이 내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즐기며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왜 음악을 하는지 이제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Q. 3년 만에 다시 스웰시즌으로 뭉쳐 한국에서만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글렌: 우리가 서로 안 본지 굉장히 오래 됐었다. 최근에 마르게타가 더블린에서 새 앨범 투어를 했는데, 그걸 객석에서 보는데 너무나 아름답고 신선하고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때 마르게타가 객석에 있는 나를 봤고, 올라와서 같이 노래하자고 해서 '폴링 슬로울리'를 함께 불렀다. 그 노래를 하는 순간 둥근 원이 딱 마무리 되는, 굉장히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한국 공연 제의가 온 거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공연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이 사실 한국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에 가겠다고 했다.
Q. 왜 객석에 있던 글렌을 무대 위로 불렀나?
마르게타: 솔로 투어를 준비할 때 그 곡을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글렌 없이 그 노래를 한다는 게 잘 상상이 안 됐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원했고, 그렇다면 노래하겠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글렌 파트를 맡아 부르기로 했었다. 그런데 더블린에 갔더니 글렌이 객석에 있는 걸 알면서 무대 위로 안 부를 수는 없었다. (웃음) 글렌과 함께 부를 때 그 노래가 가장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음악, 삶의 전부 아니지만
세상에서 나의 위치 찾아가는 방법
Q. 세 사람은 모두 밴드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많은 뮤지션들과 생각을 나눠야 하는 밴드 활동이 솔로 활동보다 어려울 것 같다.
마르게타: 우리도 스웰시즌의 멤버다. 물론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다. 밴드 활동을 하면 멤버들 관계에 변수가 더욱 많을 수도 있고. 하지만 난 내가 리더가 아니어도 밴드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는 자체가 즐겁다.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을 때도 나는 단지 영화의 한 부분에 불과했지만 모두가 협력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 에너지를 좋아한다.
글렌: 물론 아티스트는 자유로운 생각을 지녀야 하지만, 밴드의 리더로서 때론 '예스'와 '노'를 말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것을 다른 멤버들에게 이해시켜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나'를 전달하기 위한 게 아니라 '나를 통한 음악'을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함이다.
도현: YB도 딱 한 번 팀 내 불화 때문에 기타리스트가 바뀌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20년 간 같이 해왔다. 난 참 운이 좋은 게, 멤버들이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이 열려있고, 또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기타리스트는 펑크밴드를 하고 있고 또 다른 멤버는 재즈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우리 밴드이고, 밴드가 우리 음악의 태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 같다.
Q. 영화 <원스> 흥행 이후, 스웰시즌의 투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원스 어게인>(원제 '더 스웰시즌')을 선보이기도 했다. 윤도현 역시 YB의 유럽, 미국 투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온 더 로드 2>, <나는 나비>)
를 만들었다.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글렌: 이 부분은 마르게타와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데, 나에겐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밴드를 20년 넘게 해오면서 상상했던 일들이 <원스>라는 영화를 통해 한 순간에 일어났고,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밴드와 함께 내 마음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관찰해 두면, 오스카상 수상 20년 후에 다시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에 좋을 것 같기도 했다.
마르게타: 물론 흥미로운 작업이었으나 그것 자체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촬영팀이 우리와 함께 투어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한 팀이 되었다. 촬영감독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보다 단지 우리를 지켜볼 뿐이라고 했고, 그 과정에서 살짝 혼란이 오기도 했었지만 괜찮았다. 그런데 영화는 촬영보다 편집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는가. 영화에서는 우리의 로맨스와 어떤 어려움들을 좀 더 많이 비췄던 것 같은데, 그 밖에 편집된 많은 즐겁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다. 아마 잘린 장면들은 앞으로도 보지 못할 것 같다. (웃음)
도현: 우린 좀 다른 이유에서였다. 한국에서 록 밴드 음악이 대중적으로 각광받기 힘든 상황이었고, 또 국내 밴드가 유럽 투어를 한 적이 없어서 부딪혀 보는 우리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망하는 것까지.(웃음) 왜냐면 그때 한국에서 YB가 굉장히 잘 되고 있었는데 음악이라는 것이 그렇게 성공만 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직 열정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멤버들끼리도 가끔 보는데 너무 재밌고 다시 한번 힘을 내게 된다.
Q. 글렌의 공식 홈페이지 주소가 '송 오브 굿 호프(song of good hope)'다. 특별한 뜻이 있는가?
글렌: '굿 호프'는 실제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있는 곶 이름인데, 바다 물살이 아주 거친 곳으로도 유명하다. 험난한 바다와 절벽이 있는 곳이 '굿 호프'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고, 삶이 너무나 힘들어서 기도를 하거나 절제된 마음을 버리고 간절하게 삶의 자락을 잡고 있는 우리네 모습이 '굿 호프'와 같다고 생각했다. 내 앨범(<리듬앤리포즈>)의 마지막 곡 제목이기도 하다.
Q. 유명인이 된 후에도 세 사람은 작은 콘서트를 놓치지 않고 있다. 포크, 어쿠스틱한 감성 역시 세 사람의 공통점으로 보여진다.
글렌: 포크는 가장 순수한 노래 같다. 어쿠스틱 기타 하나면 되니까 가지고 다니기도 쉽고 길에서나 수천 명 앞에서나 어디서든 노래할 수 있다. 장르 자체가 굉장히 깔끔하다고 생각한다.
마르게타: 난 클래식 배경이긴 하다. 어려서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고 음악학교를 다니면서 첼로를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테크니컬한 스타일도 아니고 뭔가 잭을 꼽고 하는 것에 친하지 않다. 내 목소리 역시 자연스러운 사운드고. 물론 댄스 음악, 일렉트릭 음악을 즐기기도 하지만 내게서 그런 음악이 자연스럽게 나오진 않을 것 같다.
도현: 나 역시 포크로 음악을 시작했으나 하드록 밴드가 꿈이었기 때문에 밴드를 결성하면서 바로 전향했다. 최근에 어쿠스틱 앨범을 냈는데 곡을 쓸 때 여전히 어쿠스틱 기타를 많이 쓰고,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성향이 여전히 곡 작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Q. 우문일 수도 있겠다. '음악'은 각자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
글렌: 매번 달라지는 것 같다. 내 인생 전부라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기타를 들기도 싫을 때도 있다. 이제까지는 '음악이 내 인생의 전부야!'라고 이야기했었지만 이젠 음악 말고 인생엔 더 즐거운 다른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내가 평화나 고요를 원할 땐 항상 음악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즐거울 때보다 슬프고 괴로울 때 일기를 더 쓰지 않나? 그렇게 일기를 쓰듯 음악을 통해 내 삶의 의미를 찾는 거다.
도현: 나 역시 마찬가지다. 중간에 밴드 해체 후에 개를 키우고 살 때 이것도 나쁘지 않구나, 생각했었다. (웃음) 그런데 지내보면 또 음악이 하고 싶어지고. (웃음) 음악은 내 삶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없다고 내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다. 난 언제든지 음악을 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글렌: 맞다. 음악은 세상에서 우리 자리가 어디인지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우리 자신의 행복을 어디에서 찾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예전엔 정말 난 재미없는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항상 음악 이야기만 하고, "이렇게 해야해!" 그러고. (웃음) 음악, 영감이라는 건 굉장히 섬세하고 종잡을 수 없어서 문득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서 그녀 앞에 다짜고짜 찾아가면 여자는 "저리 가" 하면서 피하지 않나. (웃음) 음악 역시 비슷하다. 노래가 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