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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고집 세 작가의 꼿꼿한 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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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14.06.20 07:52:16

소마미술관 '작가 재조명: 긴 호흡' 전
문명사회 신랄하게 비판한 김차섭
실종된 정서적 아우라 찾는 전수천
그림자 통해 삶을 통찰한 한애규

한애규 ‘기둥들’(사진=소마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장면 1. ‘컵’(김차섭·1993)이란 제목이 붙은 유화 한 점이 눈과 발을 붙잡는다. 한구석에서 뻗어나온 흰 손에 들린 게 컵이라는 건 안다. 그런데 그 배경이란 게 컵이 등장할 그런 데가 아니다. 바다와 육지쯤으로 나뉜 듯한 세상, 컵은 그 위에 불안하게 들려 있다.

장면 2. 덩그러니 놓인 클래식카 앞에 투명 스크린이 내려와 있다. 그 ‘투명’을 향해 프로젝터는 문장과 말들을 쏘아댄다. 그중엔 이런 것도 있다.“기술적 복제시대가 찾아오자 아우라는 예술을 인식하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복제시대가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은 오늘날의 지각이 갖는 사회현상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정작 이 설치 ‘아우라의 시간여행’(전수천·2014)은 아우라를 되찾자’고 한다.

장면 3. 세상은 흙으로부터 왔다. 미술도 다르지 않다. 흙 안에 든 상상의 존재를 끄집어내는 것이야말로 미술행위의 시원이 아닌가. 빚을 것인가 깎아낼 것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 커다란 돌무더기의 ‘기둥들’(이하 한애규·2011), ‘여인입상’(2009) 혹은 ‘여인와상’(2010) 등은 카오스에서 흙덩이를 뽑아내 탄생시킨 원초적 형상이다.

생각도 다르다. 성향도 다르다. 그러니 작업도 다르다. 그럼에도 3인의 작가는 한 공간을 채운다. 김차섭(74)·전수천(67)·한애규(61). 이들이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소마미술관에서 7월 27일까지 열리는 ‘작가 재조명: 긴 호흡’ 전에 이름과 작품을 내놨다. 회화·드로잉·영상·설치 등 120점을 걸고 세웠다. 유난히 덩치 큰 작품들, 그보다 더한 작가들의 무게감에 전시는 가히 위압적이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는 짐작이 된다. 자랑할 일이라곤 평생 끌어안고 못 버린 고집과 소신, 감출 수 없는 창작열. 게다가 이 전부는 인문적 통찰력으로 무장돼 있다. 거슬리는 건 미술관이 표제어로 뽑아낸 ‘원로작가’란 타이틀이다. 생물학적 나이가 아닌 예술 연륜의 더께를 쟀더니 그렇더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맞는 말일 테지만.

김차섭 ‘컵’(사진=소마미술관).


▲김차섭 ‘실험할수록 강해진다’

산업문명에 대한 비판은 김차섭 작가가 초기 때부터 품어온 ‘날’이다. 미국 유학 당시 테이크아웃 종이커피잔을 이용해 작업했다는 ‘커피컵 시리즈’(1984∼1989)가 대표적이다. 커피 한 잔 사 먹지 못하는 저임금노동자와 돈이 차고 넘쳐나는 월가가 공존한다고? 작가의 고조된 감정은 종이컵 낱낱에 온전히 들어앉아 있다. 정점은 ‘나를 고문하는 것이 당신의 즐거움이다’는 문구로 찍었다.

이후 고민은 인류문명으로까지 확대됐다. 그 답은 지난 50여년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끊임없이 찾았다. 도구는 ‘실험’이다. 팝아트, 기하학적 추상, 미니멀리즘, 에칭 등으로 미적 실험이 거듭됐다. 인체 형상을 강렬한 색채로 담은 회화 ‘자화상’, 칼을 쓴 전봉준을 실크스크린으로 처리한 ‘상태0’까지. 이번 전시가 망라했다.

▲전수천 ‘아우라는 있어야 한다’

전수천 작가의 사고틀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에 있다. 벤야민의 논지는 ‘복제시대 예술작품에 더 이상 아우라는 없다’였다. 하지만 작가의 입장은 아우라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이 아닌 정서적·감성적인 아우라 말이다. 가령 1929년 산 아우디 자동차를 모델로 5m 천장까지 뻗쳐 올린 설치 ‘아우라의 시간여행’은 과거와 달라진 현재의 정서적 아우라를 내뿜기 위해 제작됐다. 당시 아우디는 대량복제된 공산품이었지만 바로 오늘은 묘한 향수를 던지는 미술일 수 있다는 거다. 아우라가 떠나버린 결핍의 시대에 인간성 회복문제는 지금껏 그의 일생에 걸쳐 있는 화두다.

▲한애규 ‘폐허에 드리운 그림자’

2m 장신의 여전사 7명을 전시장에 데려온 이는 한애규 작가다. 작가는 흙으로 빚고 불로 구워내는 테라코타 작업을 한다. 배경은 폐허다. 황폐해진 공간에 돌덩이 여전사들은 ‘기둥’이다. 하지만 작가가 추구하는 진정한 실존은 ‘그림자 시리즈’(2009∼2010)에서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북적였을 폐허를 채우는 건 그림자뿐이란 얘기다. 그렇게 전시장 바닥에 뒹구는 돌덩이들은 저항도 없이 시간에 투항해 그림자처럼 가라앉아 있다. 누구든 사라져 돌아갈 흙. 그 ‘없음’에 기울인 성찰이 깊다. 02-410-1044.

전수천 ‘아우라의 시간여행’(사진=소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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