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과장 사이에서 미끄러지는 현실

김병재 기자I 2013.06.13 08:30:52
이제 북한군은 한국영화에 친숙한 캐릭터가 됐다. 하지만 미국영화에선 구소련체제의 첩보요원, 아랍출신의 테러리스트를 잇는 ‘악의 축’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상영중인 우리 영화<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미국영화<백악관 최후의 날>에 북한군이 어떻게 다뤄지는 비교 분석해 본다. (편집자주)

[김선엽 수원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영화평론가] 북한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5월까지만 해도 도발적 언행으로 TV뉴스와 신문 지면을 장악하더니, 6월 들어서는 급작스런 대화공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뿐이랴. 극장가에서도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들과 남파 간첩들의 활약상이 화제다. 지난 주 개봉한 <백악관 최후의 날>과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문제의 작품들이다. 이 두 작품은 각기 미국과 한국에서 만들어진 탓에, 북한사람을 보는 관점과 캐릭터 설정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찜찜한 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북한이 ‘주적’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북한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 전이다(<007 어나더데이>(2002), <솔트>(2010), <레드 던>(2012) 등등). 독일 나치, 구소련 KGB, 아랍 근본주의자 등 시대성을 반영하며 계승되던 악당 자리가 슬금슬금 북한 쪽으로 이동하더니 급기야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는 릭윤이 이끄는 북한인 캐릭터들이 악의 축으로 등장해 제라드 버틀러, 모건 프리먼 등 쟁쟁한 배우들과 맞장을 뜨기에 이르렀다. 이 영화는 북한이 최근 조성했던 군사적 위협을 서사에 반영하는 기민함을 보여주지만, 블록버스터 특유의 ‘미국영웅 대 적국악당’의 이분법적 공식을 무신경하게 적용하는 바람에, 부정적 반응을 자초할 여지를 남겼다. 우선 적화통일이나 핵 문제는,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 말초적 오락거리로 가볍게 ‘소비’ 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북한의 핵 개발이 허풍이 아닌 현실이 된 순간부터 북한의 위협은 ‘실재하는 위험’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그마와 야만적 폭력성으로 점철된 할리우드 악당의 스테레오타입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북한 테러리스트들이야 장르 고유의 가장 저차원적 속성으로 치부 한다 치더라도, 북한말이랍시고 오가는 서툰 대사들은 ‘상품으로서의 대중영화’의 완성도 면에서 도저히 참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반면에 미국의 영화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평들을 훑어보면 다른 차원에서의 ‘비현실성’에 대한 지적이 많다. 어떻게 영화 속 백악관과 군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하며, 수뇌부는 그토록 한심하냐는 것이다(대통령 구하자고 미전역의 핵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기다릴 바보가 어디 있느냐, 미군이 진작 백악관을 폭격해 몰살시켰을 거다, 대단한 북한 선전영화다 등등). 심지어 몇몇 현지 누리꾼들은 북한인의 테러에 열 받은 일부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고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는 통에 극장 안이 살벌했다고 쓰기까지 했다(IMDb 리뷰 중).

한편, 남파 간첩 3인방 류환/동구(김수현), 해랑(박기웅), 해진(이현우)이 주역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12일 현재 400여만 명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세운 이후에도 믿기 힘든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에서 북한인은 크게 두 부류다. 지도층(손현주, 주현, 고창석 등)은 사악한 북한인의 오랜 특징인 야비함을 상투적으로 재현한다. 대조적으로, 특수공작부대 출신인 간첩 3인방은 하필이면 모두 꽃미남에 인간미를 지닌 탓에 대다수 관객에게 연민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기야 달동네 이웃들의 사소한 문제에도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고 ‘오마니’나 동료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지며 결전의 순간 이웃에게 폐가 될까봐 동네를 떠나가는 간첩이라고 한다면,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허나 안타깝게도 이건 허상이다. 보수적인 미국 관객의 화를 돋울 만큼 부풀려진 북한 악당이 할리우드의 계산에서 의도된 과장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너무도 순수하고 의리와 정이 있는 훈남 간첩 역시 한국인의 바람이 투사된 낭만의 산물 아니겠는가. 즐기자고 만든 영화에 죽자고 덤비고 싶진 않다. 하지만 21세기는 소프트파워가 지배하는 시대인 바, 가랑비에 옷 젖듯이 미국 관객에게 북한을 주적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는 영화의 출현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는 건 불길하다. 마찬가지로, 냉엄한 정전 상태에서 훈남 간첩에 열광하는 현상도 뜨악하다. 대부분의 북한 동포들은 이 과장과 낭만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