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종수기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재계는 큰 경험을 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당수 국내기업들이 금융위기 하에서 세계시장 지배력을 높였다. 세계적으로 명성높은 해외기업들이 움츠리는 상황에서도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거센 파고를 이기지 못하고 쇠퇴한 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들은 올해 엄청난 구조조정을 겪어야 한다.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0년 재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경영전략의 핵심을 어디에 둘까. 3회에 걸쳐 올해 재계가 추구하는 목표와 예상되는 변화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2010년 재계를 바라보는 주요 관전 포인트는 뭐가 될까.
우선 새해 글로벌 시장환경이 만만치 않다. 글로벌 산업구조조정 같은 또 한번의 격변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경기확장적 재정집행에 나섰던 세계 주요국가들은 출구전략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금리인상 등 기업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조치들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소비는 둔화세다. 달러 약세의 지속은 수출환경에 불리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세계시장 잠식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부활노력도 만만치않다. 복합적 요인들이 우리 기업들을 위협할 조짐이다.
국내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워크아웃 사태 등으로 국내 금융시장의불안정성이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긍정적 전망이 대세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해 낸 우리 기업들이 올해 역시 `도전`과 `변신` 노력을 거듭하며 역경을 이겨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안정과 긴축에 주안점을 뒀던 지난해의 수세적 경영에서 벗어날 조짐이다. 올해는 미래 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공세적 경영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M&A(인수·합병) 시장에선 굵직한 기업들이 매물로 쏟아져 나올 예정이어서 재계 순위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새해 재계는 오너, 전문경영인 할 것 없이 세대교체를 통한 젊은 패기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젊고 빠른 경영이 과연 우리 경제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지 관심사다.
또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금지를 규정한 노조법 개정안이 지난 1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노사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 삼성전자·현대차 질주 화력 계속될까
"이제는 앞서간 삼성전자의 뒷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 한 일본 경제 월간지에 실린 이런 탄식은 일본 전자업체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어느 순간 일본 전자업계의 자존심인 소니를 추월하더니 이제는 격차가 점점 벌어져 소니 최고경영진이 "삼성전자 때문에 숨도 못 쉬겠다"고 토로할 정도가 됐다.
이처럼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 승승장구했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승자들의 질주가 계속될지가 올해 재계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와 LCD TV, 휴대폰뿐만 아니라 컴퓨터, 생활가전, 프린터, 시스템LSI 등에서도 올해 세계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전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10% 넘게 판매를 늘린 현대·기아차는 올해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을 적극 공략, 전년(463만대)보다 16% 가량 늘어난 540만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철강업계는 국내외에서 연이어 고로 건설 소식을 전할 전망이다.
국내의 경우 현대제철(004020)의 고로 가동으로 포스코와 함께 고로 경쟁시대를 연다. 포스코(005490)는 인도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동국제강(001230)도 브라질에서 고로 착공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며 올해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 전망이다.
◇ 글로벌 영토 확장
지난해 TV를 중심으로 글로벌 가전시장 헤게모니를 장악한 삼성전자의 올해 최대 화두는 신시장 개척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60만대의 LED-TV를 팔았다. 올해 목표는 무려 1000만대다. 거의 4배 가까운 수치다. 해외 신시장 개척에 대한 삼성전자의 자신감을 잘 보여준다.
유럽과 미국 등 대형시장에서 LED TV 등 프리미엄 TV를 연착륙시킨 삼성전자는 최지성 대표이사 사장이 취임 일성으로 아프리카 공략을 선언할 만큼 신시장 개척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으로의 적극적인 진출 의지를 보이며 레반트 법인을 설립, 본격 가동한 바 있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톱5` 진입 여부도 최대 관심거리다. 특히 중동, 중국 등 신흥시장과 북미 시장에서 신형 쏘나타, K7, 스포티지 후속, 로체 후속 등 간판급 모델들을 잇따라 출시해 신차 효과를 누린다는 계획이다.
SK는 중국사업에 승부수를 던지겠다며 조직개편과 인사를 단행했다. 현지 사업을 총괄하는 통합법인을 설립키로 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필요하다면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글로벌 영토 확장의 선봉에 서겠다"고 밝히고 있고, STX는 올해 경영전략의 맨머리에 글로벌 신시장 개척과 역량강화를 내세웠다. 작년 말 가나에서 100억달러 규모의 주택 건설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올해 유전 및 가스전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등 현지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 M&A 대어 줄줄이 대기
대형 M&A가 올해 재계의 판도를 확 바꿀 가능성이 있다.
올해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쌍용차 등이 M&A 시장의 매물로 쏟아져 나온다. 주요 매물 몸값만 어림잡아 20조원이 넘을 전망이다.
현금유동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포스코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들이 이들 물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턴어라운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의 새해 화두는 역시 주인찾기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쌍용차 매각이 화두다. 쌍용차는 이르면 이달, 매각 주간사를 선정해 8월께 매각 작업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현재 해외 2~3개 업체가 쌍용차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별 재무구조 개선 작업의 진행 과정도 주목된다. 금호아시아나는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 자율협약을 맺은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경영을 조기 정상화하는 게 최대 과제다.
◇ 닻 올린 3세 경영…"더 젊고 더 빠르게"
삼성, 현대·기아차, SK, GS, 신세계 등 최근 단행된 주요 대기업의 인사에서 공통으로 읽을 수 있는 화두는 세대교체다.
재계가 새해 공격 경영을 위한 준비를 끝낸 만큼 2010년 재계의 모습은 더 젊어지고, 움직임은 더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올해는 `속도`가 우리 기업 경영의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각 그룹 창업주의 3세들이 경영의 전면에 나서며 자연스레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삼성에서는 이재용 부사장이 삼성전자의 각 사업부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으며 전면 등장했다.
삼성전자(005930) 조직은 이 부사장의 측근인 최지성 단독 CEO 아래 7개 사업부로 재편됐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으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사장으로 승진한 10명 중 9명이 50대 초반인 점도 이번 인사의 성격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신세계(004170) 역시 전문 경영인 구학서 부회장 대신 이명희 회장의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이 총괄 대표이사로 나섰다.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도 신세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또 허동수 GS(078930)칼텍스 회장의 장남인 허세홍 싱가포르 현지법인장이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003490) 상무와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상무도 각각 전무로 승진했다.
지난해 8월 승진한 정의선 현대차(005380) 부회장은 활동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처럼 3세 경영 체제가 본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은 시장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 때문이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대주주가 나서야 위기 극복과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와함께 LG전자(066570)가 84개 해외 법인 가운데 6개 법인장을 외국인으로 배치한 것도 속도 경영을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SK에너지(096770)도 의사결정의 스피드 제고를 위해 자원개발 사업을 CEO 직속조직으로 분리∙독립시키기로 했다.
◇ 노사관계 큰 변화 예고
복수노조 및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를 다룬 노조법 개정안이 지난 1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국회를 통과했다.
복수노조는 1년6개월 유예하고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폐지는 오는 7월부터 적용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에따라 노조 전임자 수가 대폭 감소하고 적용 사업장에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노조가 생기면서 노조간 경쟁시대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는 이와관련, 개정 노조법이 노사관계 선진화의 기폭제가 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조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노·사·정 합의 내용이 누더기처럼 변해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상반기 중 노사정이 참여하는 심의위원회를 구성, 유급 노조활동 범위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어서 이 과정에서 노사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 관련기사 ◀
☞12월 29일 최승욱의 쪽집게 리포트
☞증권사 신규 추천 종목(29일)
☞현대제철, 내달 5일 고로 첫 가동 `이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