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모든 남성이 바라 마지않는 '정력'의 실체다. 그러나 이제 남성호르몬이 많은 사람은 '힘'뿐 아니라 '명(命)'까지 부러워해야 할 것 같다.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은 사람은 사망률이 낮으며, 반대로 낮은 사람은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사망률까지 높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에른스트-모리츠-안트대 로빈 하링 박사팀은 최근 미국서 열린 내분비학회(Endocrine Society) 연례 모임에서 남성호르몬 수치가 낮은 사람은 사망할 확률이 높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20~79세 남성 2000명을 10년 동안 추적조사한 결과, 남성호르몬 수치가 정상보다 낮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약 2.5배 높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영국 케임브리지 의대 케이티 콰 박사팀은 40~79세 남녀 1만1606명을 조사한 결과, 혈중 남성호르몬 수치가 평균 12.5n㏖/L 이하인 그룹은 혈중 남성호르몬 수치가 평균 19.6n㏖/L 이상인 그룹에 비해 10년 뒤 사망할 가능성이 41% 높다고 2007년 미국심장학회에서 발간한 의학전문지 '순환(Circulation)'지에 발표했다.
이들 연구진들은 혈중 남성호르몬 수치와 향후 사망률과의 관련성을 심혈관 질환이나 암에 걸릴 위험도가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남성호르몬은 2차 성징을 촉진하고 성욕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베타-아드레너직'이라는 수용체와 붙어 지방분해를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남성호르몬이 부족해지면 지방 분해과정이 억제돼 체내에 지방이 많이 쌓이게 된다. 이로 인해 고혈압, 고지혈증과 같은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축적된 지방 때문에 인슐린 내성이 증가돼 당뇨병도 생길 수 있다.
여의도성모병원 비뇨기과 김세웅 교수는 "최근 들어 남성호르몬의 여러 가지 기능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몇몇 연구들에 따르면 남성호르몬은 혈관을 손상시키는 플라그 형성을 억제하며, 심장혈관에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몇 해 전부터는 남성호르몬이 심혈관 질환 등의 전단계인 대사증후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논문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돼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서울대의대 가정의학과 교실 연구팀은 40세 이상 성인 남자 231명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혈중 테스토스테론이 정상인 그룹(3.6~4.8ng/mL)과 정상보다 많은 그룹(4.9~28.5ng/mL)은 대사증후군 유병률이 각각 48.7%와 49.4%인 반면, 테스토스테론이 낮은 그룹(1.0~3.5ng/mL)은 65.3%이었다는 연구 결과를 2007년 대한가정의학회지에 발표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는 "최근에는 고혈당, 고혈압, 고지혈증 못지 않게 낮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도 대사증후군의 중요한 인자로 인정 받고 있다"며 "특히 남성호르몬은 내장 비만이나 복부 비만에 큰 작용을 한다" 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성호르몬 수치를 인위적으로 높여준다면 이런 질병들도 미리 예방하고 사망률도 낮출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성호르몬제를 쓰면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으므로 아주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이성원 교수는 "남성호르몬 수치가 낮은 사람에게 호르몬제를 쓰면 성욕이 생기거나 발기가 잘 되는 것 이외에도 근육량이 감소되고 뱃살이 줄어드는 효과가 덤으로 나타난다"며 "대사증후군 치료에도 일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립선암 위험도 증가하므로 무턱대고 써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세웅 교수는 "이런 이유 때문에 남성호르몬제를 투여하기 전에는 반드시 피검사를 통해 전립선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남성호르몬 수치가 정상인 사람에게 호르몬제를 투여한다고 해서 대사증후군 위험이 감소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남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진 사람에서도 호르몬제가 당뇨, 고혈압, 심장병 등의 발병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지 이런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