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주부 박모(33)씨는 매달 20만원씩 은행 자동이체로 내고 있는 남편의 종신보험료를 신용카드로 내기로 마음먹고 S생명 콜센터에 문의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는 불가능하다”는 것. “카드 가맹점 계약은 되어 있지만, 몇몇 실무적 문제가 있어서 신용카드를 이용한 보험료 납입은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박씨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보험사가 왜 편리한 카드를 안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법 어겨가며 카드 결제 거부
신용카드로 보험료를 내고 싶어하는 보험 소비자들이 많다. 보험료를 신용카드로 납부하면 소득공제도 많이 받고, 카드 포인트도 많이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통장에 잔액이 부족해도 보험료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보험사는 신용카드 가맹점이면서도 대부분이 신용카드로는 보험료를 받지 않거나 제한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보험사의 경우 삼성·대한·교보 등 소위 ‘빅3’에 확인해 봤더니 모두 “신용·체크카드를 이용한 보험료 납부는 처음 보험에 가입할 때만 가능하고 이후에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현재 생보사 보험료의 98%는 은행 자동이체로 걷히고 있다. 손해보험사의 경우도 자동차보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신용·체크카드로는 보험료를 받지 않는다.
이 같은 행위는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 거래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보험사들은 신용·체크카드를 안 받아도 된다’는 규정이 없는데, 만약 카드를 받지 않는다면 법 위반”이라고 해석했다.
◆보험사들의 궁색한 변명
그렇다면 왜 보험사들은 카드를 안 받는 걸까? 보험사들은 제도적 문제를 들고 있다.
A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업법상 보험료를 걷을 때 드는 비용을 ‘수금비’로 정해놓고, 그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제, “현행 규정상 수금비는 보험료의 2.5%에 불과한 반면, 카드사에 내야 할 수수료는 3%대가 넘어가기 때문에 보험료를 카드로 받으면 오히려 보험업법을 위반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국계 보험사인 AIG가 카드로 받는 것을 보면,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AIG 관계자는 “보험개발원 지침에는 수금비를 2.5%로 권장하되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조정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AIG는 수금비 비율을 높여 카드 수수료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또 예금이나 펀드 등 다른 금융상품도 카드를 안받는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카드를 안 받는다는 보험사들도 영업에 도움이 될 때는 카드를 받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보험 가입 후 처음 내는 보험료(초회 보험료)나 연 1~2회만 내면 되는 자동차보험은 카드를 받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보험모집인 최모(35)씨는 “처음 보험을 가입할 때는 현금이 없는 사람도 부담 없이 보험료를 낼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카드 납부를 받는다”고 털어놨다.
◆진짜 이유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카드 수수료 부담을 일선 보험 영업조직에 떠넘기고 있는 것도 카드로 보험료를 낼 수 없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상당수의 보험회사들은 신용카드사에 가맹점 수수료를 낼 경우 이를 보험모집인의 부담으로 정해 놓고 있다. 따라서 보험사가 보험모집인에게 주는 사업비를 올려주지 않는 한, 보험모집인은 카드로 보험료 받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것.
보험모집인 A씨는 “본사에서 카드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면 우리도 보험료 카드 납부를 꺼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감독 당국은 뭐 하나?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카드를 받는 것이 원칙이고 그렇게 지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카드 안 받는 보험업계 관행은 여전하고 금감원이 지도를 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적도 없다.
금감원은 또 최근 ‘체크카드 활성화 방안’을 통해 예금과 펀드, 주식 납입 대금은 물론, 복권과 카지노 칩까지 체크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유독 보험료는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 생명보험사들이 걷어 들인 보험료는 66조원에 이르렀다. 손해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 이외의 개인 보험에서 받아간 돈도 13조6000억원에 달한다. 보험사는 이를 수금하는 비용으로 2.5% 정도(1조원 상당)를 책정해 놓고 있지만, 고객이 은행 자동이체로 보험료를 낼 경우 수금 비용이 0.1%도 안 되므로, 그 대부분을 앉아서 버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