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고령자 운전 논란
80세 고령자 기준 장비 착용 후 운전 체험
제한된 시야 속 사이드 미러 등 확보 어려워
고령자 특성 고려한 인프라 개선 절실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13호차 실격입니다. 자, 내리세요”
지난달 서울 마포구의 도로교통공단 서부운전면허시험장. 80세 노인 기준의 평균 체력과 감각으로 진행한 체험은 보기 좋게 탈락으로 끝났다. 후진도, 기어 변속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 서울 마포구 도로교통공단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본지 기자가 80세 노인 체험 기구를 착용하고 운전하고 있다. (사진=황병서 기자) |
|
최근 본지 기자가 대한노인협회에서 인증하는 80세 노인 체험 기구를 착용하고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기능 시험에 도전했다. 착용한 기구로는 △고글(시야 결손·백내장) △등 보호대(굽어진 자세) △장갑(손과 손가락 촉각 저하) △손목 500g 구속 도구(근력 쇠퇴) △손가락 구속 도구(손가락 관절 제한) △발목 1㎏ 구속 도구(다리 근력 쇠퇴) △팔꿈치 구속 도구(관절 제한) △귀마개 등이 있다. 모두 노인의 신체능력 저하를 염두에 둔 장비다.
해당 장비를 착용한 후 2종 보통 운전면허 기능시험에 나섰는데 이는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허리는 꺾여 있었고 고글을 쓴 터라 양쪽 시야가 상당히 막혀 있는 등 제약 조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어 변속 등 △차로 준수 △돌발 △경사로 △신호 교차로 △직각주차 △가속 △방향지시등 △신호유지 등으로 진행되는 시험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행이 시작됐고 오르막길서 한 번 멈춰야 했다. 다행히 정지선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시야가 좁아진 상태였지만 사이드미러를 보며 뒷바퀴의 정지선을 잘 지킬 수 있었다. 문제는 직각주차 코스에서 시작됐다. 주차장에서 매일 하던 후진 주차 과정에서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 순간 ‘삑’하고 경고음이 들려왔다. 당황하던 찰나 앞뒤로 운전하며 각도를 만들려고 애썼지만 쓴 고글에 시야를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직각주차를 마친 다음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리는 과정에서도 팔꿈치 관절을 제대로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 14일 서울 마포구 도로교통공단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80세 노인 체험 도구를 착용하고 운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안내 화면.(사진=황병서 기자) |
|
이처럼 고령자가 신체능력 저하로 운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1997년부터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당시 일본 정부는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실버 마크제’를 도입했다. 이 마크를 붙인 차량을 옆에서 바짝 따라붙거나 추월하기만 해도 벌칙을 주는 방식이다. 고령 운전자들이 차를 세워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하철역 주변에 고령 운전자 전용 주차장도 설치했다. 또 비가 올 때 차선이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는 등 고령 운전자를 배려한 인프라를 곳곳에 마련해 놨다.
우리 정부도 2020년 말 ‘고령자를 위한 도로설계 가이드라인’을 내면서 고령자의 특성을 고려한 도로 계획 등을 발표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고령자의 취업 비율이 높은 한국의 현실 등을 고려하면 이들을 위한 친화적인 도로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며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혼동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장치를 장착하면 보조금을 주는 등의 제도도 필요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