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혁신@미술]<5> "복제한 성화 팝니다"…교회, 블루오션에 뛰어들다

오현주 기자I 2020.07.17 04:10:00

▲최초의 '매스미디어 아트' 목판화
중세유럽 교회·수도원, 가난한 신도 대상으로
값싼 성화 목판화 대량생산…'가치혁신' 선도
기업들, 경쟁보단 아이디어로 새 시장 창출을

복제해서 대량생산할 수 있는 판화. 그 조상격인 ‘목판화’를 서양에서는 14세기 말부터 본격 제작했는데, 여기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이는 미술가도 장인도 아닌 교회와 수도원이었다. 성화를 가질 수 없는 가난한 신도를 대상으로 ‘복제한 성화’를 팔았던 거다. 매스미디어 아트의 잠재력을 알아본 ‘가치혁신’이었다. 그즈음인 1423년경 제작된 작자 미상의 ‘성 크리스토포루스’(St Christophorus)는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 목판화 중 하나다.


미술은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밥으로만 채울 수 없는 풍요와 평화를 안겨줬으니까요. 그림의 힘이고 조각의 에너지입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할이 이뿐이라 한다면 미술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문명을 이끌고, 의식을 뒤집고, 결정적으로 돈의 흐름을 주도했던, 그것을 못 본 겁니다. 미술의 사조와 양식이 탄생할 때마다 세계경제에는 ‘변화의 그림’이 걸렸습니다. 바로 ‘혁신’을 주도했던 겁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미술로 이룬 혁신’의 현장입니다. 3D 컴퓨터그래픽에까지 이어지는 이집트 미술, 스페이스X 민간우주선의 근원인 그리스 미술, 대량생산의 개념을 만든 목판화, 메디치가문의 부가 만든 피렌체 미술, 부르주아를 탄생시킨 인상파 미술 등을 비롯해 구스타프 클림트,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등 ‘혁신의 아이콘’까지.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주헌 미술평론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이 있다. 수고한 사람 따로 있고 덕 보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다. 인생사나 비즈니스에서 곧잘 일어나는 일이다. 얼핏 불공정해 보이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곰’이 자신의 재주를 알아보지 못한 반면, ‘왕서방’이 이를 알아보고 그 권리를 사용했다면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 그만한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혁신은 단순히 기술이나 품질의 제고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단위(單位)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기술과 노하우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할 때 최상의 가치를 창조할지 전체와 맥락을 통찰하는 능력에서도 나온다. 꼭 없던 것을 새로이 만드는 것뿐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역시 혁신을 초래한다. 이른바 ‘가치혁신’이다.

△소프트웨어 가치 알아본 빌 게이츠…곰 재주 알아본 ‘왕서방’ 돼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 운영체제는 빌 게이츠(65)가 직접 만든 게 아니다. 그는 불과 7만 5000달러(약 9000만원)를 주고 다른 회사로부터 86-DOS를 구입했다. 게이츠는 86-DOS를 보완해 이를 MS-DOS로 IBM에 공급했다. 1981년 애플이 주도하던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IBM은 운영체제의 중요성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IBM은 운영체제를 ‘아웃소싱’함으로써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이를 공급받았다. IBM은 ‘돈이 되는’ 컴퓨터 본체를 생산하니 운영체제처럼 ‘부수적인’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게이츠는 컴퓨터의 미래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달려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IBM에 MS-DOS를 팔 때도 제삼자 사용권 등 운영체제에 대한 권리는 넘기지 않았다. 이후 컴퓨터 제조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저마다 MS-DOS를 사용하자 게이츠가 가치혁신의 주도자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우리가 알 듯 그는 컴퓨터산업의 ‘왕서방’이 되었고, 86-DOS의 권리 일체를 다 판 최초의 개발사나 갈수록 쇠락한 IBM은 결과적으로 ‘곰’이 되고 말았다.

미술의 여러 장르 가운데 판화는 근대 미디어산업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 문명사적 의미를 지닌다. 모든 판화예술의 조상격인 목판화는 서양의 경우 14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됐다. 그런데 초기에 이 신생 예술로부터 가장 큰 이득을 얻은 이는 미술가나 장인들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교회와 수도원이었다. 교회와 수도원이 ‘매스미디어 아트’로서 판화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블루오션’을 개척해 가치혁신의 선구자가 된 것이다. 내막은 이렇다.

널리 알려져 있듯 목판인쇄술의 원류는 중국이다. 3세기 초 비단에 목판으로 꽃무늬를 찍은 한나라의 유물이 지금껏 전해진다. 중국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도 일찍부터 목판인쇄술이 발달했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현전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통일신라시대의 것(751년 이전)으로 추정한다. 반면 유럽에서는 목판인쇄술이 뒤늦게 꽃피었다. 중국식 목판인쇄술이 유럽에 전파된 게 13세기 무렵이다. 이 수입기술을 발전시켜 유럽에서는 14세기 말부터 목판화를 본격적으로 만들었다.

유럽의 판화예술은 이처럼 그 출발이 아시아에 비해 상당히 늦었다. 하지만 초기 목판화 시장의 급격한 확산을 토대로 동판화·석판화 같은 혁신적인 판화기술을 개발하고 다양한 종류의 판화작품들을 양산함으로써 이후 판화예술뿐 아니라 신문·잡지 등 미디어산업을 선도하게 된다. 초기에 판화시장 확대를 주도한 교회와 수도원이 바로 그 성장의 디딤돌을 놓아준 것이다.

작자 미상의 ‘성 크리스토포루스’(St Christophorus).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 목판화 중 하나로 1423년경 제작됐다. 크리스토포루스는 가나안(혹은 시리아) 출신의 3세기경 인물. ‘그리스도를 업은 자’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기독교 성인 14명’ 중 한 사람으로 항해자·여행자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됐다. 영국 맨체스터 존 라이랜즈 도서관 소장.


△목판화 제작해 이득 본 건, 미술가·장인 아닌 교회·수도원

중세 유럽인들은 잦은 전쟁과 전염병, 기근으로 힘겨운 삶을 살았다. 흑사병이 심하게 돈 14세기에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그 제물로 사라졌다. 이런 시련 속에서 사람들은 재난과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신의 은총과 가호뿐이라고 생각했다. 중세 초부터 유럽의 교회와 수도원은 성인(聖人)과 순교자의 유해 같은 성유물(聖遺物)을 수집했는데, 이는 성유물에 병을 치유하고 재난을 막아주는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많은 순례자가 그 기적을 체험하고자 소장처를 찾아다니니 교회와 수도원은 더욱 열정적으로 성유물을 수집했고, 성유물로 소문난 교회와 수도원에는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엄청난 수입이 발생했다.

성유물에 대한 믿음과 함께 성화(聖畵)에 대해서 또한 기적과 은총의 통로라는 인식이 자라났다. 성인이나 순교자를 그린 성화를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그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성화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컸지만, 대다수의 가난한 신자들에게 성화 소유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즈음 값싼 복제미술인 목판화가 제작되기 시작하자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 게 교회와 수도원이었다. 교회와 수도원이 직접 나서서 성화 목판화를 대량으로 찍어내기 시작했고 이를 신자와 순례자에게 팔아 그들도 ‘은총을 소유할 기회’를 갖게 했다. 이 블루오션의 개척으로 교회가 큰 이득을 봤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제작한 목판화의 인기 주제 가운데 하나가 성 크리스토포루스(St Christophorus·크리스토퍼)였다. 1423년경에 제작된 작자 미상의 목판화 ‘성 크리스토포루스’를 보면, 크리스토포루스가 어린 예수를 어깨에 태워 나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힘이 세고 건장한 크리스토포루스는 강가에서 지내며 돈이 없어 배를 타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기 어깨에 태워 건네주곤 했다. 한 번은 어린아이를 옮겨주다가 아이가 갑자기 너무 무거워지는 바람에 가까스로 강을 건넌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아이가 예수였다.

‘예수를 건네준’ 크리스토포루스는 이후 뱃사공과 어린이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졌고, 그의 이미지를 본 사람은 그 당일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뱃사람을 비롯해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성 크리스토포루스 목판화를 구입했고, 이 문화는 오늘날 안전운전을 기원하는 서양인들이 자동차에 성 크리스토포루스 이미지를 새긴 스티커나 장식물을 부착하는 문화로 남아 있다.

△통찰력을 얻으려면…기능적 사고 넘어 통합적 사고 필요

일찍이 ‘블루오션 전략’을 주창한 프랑스 인사이드경영대학원의 김위찬 석좌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가치혁신이론’을 제안하며, 기업들로 하여금 신기술 개발에만 매달리지 말고 성장이 제한된 시장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라고 권했다. 두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굴지의 세계적 기업들은 대부분 기존 시장에서 경쟁자들과 싸우는 것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함으로써 크게 성공했다. 곰이 부리는 재주가 기술혁신이라면, 그런 단위 혁신을 뛰어넘어 전체를 꿰뚫어봄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게 왕서방의 혁신, 곧 가치혁신이다. 이런 통찰력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기능적 사고를 넘어 통합적·통섭적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생각의 탄생’(2001)의 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한 다음의 말을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우리에게는 통합적인 마인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 혁신의 기법이란 항상 모든 분야에 걸쳐 있으며 다양한 방법론을 가진다. 따라서 미래는 우리가 앎의 방법 모두를 통합해서 통합적 이해를 창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왕서방으로 상징할 가치혁신의 선구자들이 그 통합적 이해의 달인들이다.

※ 성화 聖畵·Holy Picture. ‘종교화’라고도 부르듯, 대개는 목적을 두고 그린 그림이다. 예배·전례·수신·포교·찬미 등의 종교활동이 그것이다. 종교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주로 신이나 신적 인격을 형상화한다는 맥락은 유사하다. 이슬람교나 유대교에서는 세상에 하나뿐인 절대신을 도상으로 표현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불교와 기독교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기독교, 종교가 곧 삶이던 고대·중세시대에는 걸작이라 불리는 회화의 대부분이 성화로 제작됐다.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서는 절정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프라안젤리코, 보티첼리,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 쟁쟁한 대가들의 손과 붓 역할이 컸다. 매체도 가리지 않아 종이와 캔버스는 물론 벽과 제단에까지 성화가 진출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가진 자’의 몫이었을 터, 가난한 서민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신의 가호도 ‘빈익빈 부익부’이던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 ‘복제된 성화’, 목판화였다. ‘불의 성모’라 불리는 초기 이탈리아의 목판화 ‘마돈나 델 푸오코’(Madonna del Fuoco·작자 미상)도 그중 한 점이다. 1425년경 제작돼 이탈리아 포를리의 한 학교에 걸렸다가, 1428년 일어난 화재로 소실될 위기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후 포를리시 성당으로 옮겨진 뒤 ‘많은 기적을 일으킨 성화’로 전해지고 있다.

작자 미상의 ‘마돈나 델 푸오코’(Madonna del Fuoco). 1425년경 제작된 초기 이탈리아 목판화다. 이탈리아 포를리의 한 학교에 걸렸다가 1428년 일어난 화재로 소실될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뒤 ‘많은 기적을 일으킨 성화’로 회자됐다.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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