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이거 가격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이 가격 맞나요?”
미국 뉴저지의 한 마트에서 산 건전지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아무리 많이 쓰는 형태가 아니라지만, 달랑 건전지 두개 들어 있는데 14달러(약 1만5000원)라니, 좀 심한 것 같았다.
영어로 싸울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혹시나 가격이 잘못 기재된 건 아닌가 싶어 별 기대 없이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점원은 “한번 봅시다” 이러더니 자기 스마트폰으로 아마존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니 갑자기 아마존 가격은 왜 찾아보는 거야?’ 속으로 잠시 생각하던 사이, 점원은 쿨하게 말했다.
“우리 가격이 아마존보다 비싼 게 맞네요. 미안해요. 아마존에 나온 가격 8달러로 정정해 드릴게요.”
“네?” 그 순간 진심으로 놀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40%가 넘는 할인가를 적용받고 건전지를 손에 들고 나왔다.
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민다. 옆집 사는 미국인 친구는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때 샀던 골프가방을 반품한다며 커다란 소포를 들고 아파트 로비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며칠 전만해도 150달러짜리를 100달러에 샀다며 자랑하던 그였다.
“주문한 게 갑자기 마음에 안 들어?” 물으니, 그 친구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마음에 쏙 들어. 그런데 어제 보니까 아마존에서 갑자기 50달러에 팔더라고. 이거 반품하고 똑같은 걸로 아마존에서 다시 주문했어.”
미국에서 제값 주고 물건을 사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 그야말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발품을 팔수록 가격이 내려간다.
똑같은 뉴욕 맨해튼 주차장도 그냥 가면 2시간에 60달러가 넘지만, 쿠폰을 내려받아 보여주면 20달러만 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누군가는 60달러를, 누군가는 3분의1 가격인 20달러만 내고 똑같은 주차장을 이용한다.
세금도 곳곳이 다르다. 주별로 독자적인 세금체계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한 지역 내에도 세금부과가 달라진다.
뉴저지에선 상품에 7% 가까운 판매세가 붙는데, 도심산업장려지구(Urban Enterprise Zones)로 정해진 몇몇 지역은 판매세가 3.5%만 붙는다. 똑같은 월마트, 똑같은 물건이라도, 도심산업장려지구에 있는 월마트에서 사면 판매세를 절반만 낸다. 값비싼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살 땐 3.5%포인트 차이가 꽤 크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묻자, 한국의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것 같습니다.”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는 물가가 낮다고 걱정이다. 미국 경제가 견실하게 성장하는데, 물가는 생각보다 안 오른다는 거다. 미국의 경제구조에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저물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아마존이 미국의 물가를 내리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도 많다. 아마존이 무섭게 가격을 내리면서 전반적인 물건값이 따라 내려간다는 거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온라인 구매가 확대되면서 미국의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0.25%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무한 경쟁이 저물가를 낳는다는 거다. 이건 거라면, 소비자들에겐 행복한 저(低)물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