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씨는 대형마트가 개장하는 오전 9시 전까지 자신이 맡은 대형마트로 출근한다. 자사제품 판매와 진열, 관리, 시식행사를 준비하는 게 공식적인 역할이지만, 그의 일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A식품의 제품은 물론이고 B식품, C식품, D식품 제품까지 매대에 진열하는 것은 기본이고, 창고정리에 매장 청소까지 모두 신씨의 몫이다.
신씨는 “마트가 12시가 넘어서 문을 닫기 때문에, 그 이후에 재고조사를 해야하는 점이 가장 힘들어요. 늦게 퇴근하니까 아이들한테도 미안하고요. 그나마 청소하는 범위가 예전보다 줄어서 조금 상황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유통업이라는 외형은 비슷하지만 영업의 성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백화점은 마치 부동산 임대업처럼 백화점에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입점한 제품 회사로부터 판매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다. 직접 물건을 파는 것은 백화점이 아니라 입점한 각 브랜드가 담당한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고객에게 팔 물건을 직접 구매해 창고에 보관한다. 따라서 대형마트의 모든 판매촉진 활동은 전적으로 대형마트의 몫이다. 그래서 대형마트는 판촉행사 비용을 대형마트가 모두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협력사가 자발적으로 신청할 경우’는 대형마트가 협력업체의 파견직원이나 비용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은 파견 직원을 보낼 때 계약서를 쓴다. 자발적으로 보내는 거라고 서류에 명시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마트가 이런 예외조항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상 대형마트의 강요에 의해 계약서가 작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 한 관계자는 “대형마트 직원들이 아예 협력사의 도장까지 가지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이마트(139480),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에 파견된 판촉사원 규모는 총 4만3201명(2011년 기준)다. 납품업체당 파견인원이 평균 53.4명이다. 제법 큰 납품업체는 관리하는 판촉사원 인력만 1000여명이 훌쩍 넘는다.
판촉사원 1명당 월급을 200만원으로 계산하면, 납품업체들이 판촉사원 운용을 위해 쓰는 인건비만 1조원을 웃돈다. 한 업체당 평균 13억원 이상의 돈이 든다. 납품업체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공정위는 지난 7월 무분별한 판촉사원 파견을 막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했다.
홈플러스는 판촉사원과 관련해 지난달 공정위로부터 13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맞기도 했다. 2011년부터 납품업자의 판촉사원을 홈플러스 정직원으로 전환했지만, 4개 납품업체로부터 직영 전환에 필요한 인건비 17억원을 상품대금 공제나 무상 납품, 판매 장려금 추가 징수 등의 방법으로 받았다는 혐의다.
◇ 시식 내놓으면 매출 2.5배 껑충..일부‘아쉽다’ 반응도
롯데마트를 시작으로 대형마트가 판촉사원을 줄이기로 결정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판촉사원을 파견하는 납품업체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 비용이 들지만, 판촉사원을 파견하는 게 납품업체 입장에서도 유리하다는 인식이 의외로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판촉사원이 나와서 시식행사를 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해당 제품의 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며 “보통 시식행사를 하면 판매가 2.5배 늘어난다”고 말했다. 협력사들이 서로 판촉사원을 보내려고 해서, 조정하느라 바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B식품사 관계자는 “대형마트에서 필요할 때마다 파견을 강요하는 면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B사의 경우 1등 업체와의 판매격차를 줄이려면 시식 중심의 판촉행사를 늘리는 게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시식행사를 통한 매출 증가가 ‘착시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파견 직원을 빼고 경쟁사가 시식행사에 나서면 매출이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대형마트에 인력만 제공하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시식행사를 위한 판촉사원을 받을 일이 아니라 제품가격을 더 낮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고객에게도 가격을 낮추는 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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