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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의 톡톡아트]아테나, 딸바보 아버지의 딸

유경희 기자I 2012.05.05 13:01:29

"완벽한 그녀, 섹시하지 않아!"

▲ 기원전 438년경에 건축된 아테네 신전에서 출토된 금, 나무, 상아로 만들어진 아테네상

[이데일리 유경희 칼럼니스트] 세상에 수많은 알파걸들이 있다. 그리고 알파걸은 자주 골드미스가 된다. 싹싹하고, 자신감 넘치고, 정의롭고, 요리에 살림까지 썩 잘한다. 그녀들은 못하는 게 없지만, 단 하나 못하는 게 있다. 그것은 연애 혹은 결혼인 것이다. 이처럼 자발적인지 비자발적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홀로 사는, 한번도 결혼하지 않았거나 다시 홀로된 여자들이 넘쳐난다. `능력있는` 혼자 사는 여자들을 보면 그리스신화 속 여신 아테나가 생각난다.

▲ 렘노스섬에서 발견된 테라코타 조각, 기원전 6세기경,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고 있다
전쟁의 신이자 지혜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 아테나는 제우스가 홀로 나은 딸이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제우스의 첫 배우자는 헤라가 아니라 메티스였다. 티탄족 출신의 메티스는 대양을 지키는 여신으로 그 지혜가 널리 알려진 여신이었다. 제우스가 메티스와 결혼하자 가이아는 제우스가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와 할아버지인 우라노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자 제우스는 임신한 메티스를 작게 만들어 삼켜 버렸다. 그리고 해산이 가까워졌는지 제우스는 머리가 뽀개질 것같은 극심한 진통에 시달린다.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헤라가 혼자 낳은 아들인 대장장이 신 헤피이스토스가 달려온다. 헤파이스토스가 도끼로 단박에 제우스의 머리를 치니 금빛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창을 들고 괴성을 지르면서 아테나가 태어났던 것이다.

이런 신화적 상상력은 예술을 넘어설 정도로 압도적이지 않은가?! 제우스는 본의 아니게 혼자 낳은 이 딸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자기를 쏙 빼닮은 것이다. 딸바보가 된 제우스는 자신을 상징하는 천둥과 방패를 아테나에게 맡길 정도로 그녀를 신뢰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테나는 인간 영웅들의 친구이자 보호자를 자청한다. 아테나는 페르세우스와 이아손과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와 같은 영웅들에게 충고를 해주고 돌봐주고 지켜주고 전쟁에서 이기게 해준다. 주로 멋지고 잘생긴, 자기 말을 잘듣는 인간 오빠들과 친한 셈이다.
▲ 로마시대 작품으로 아테나가 자신의 신조인 부엉이를 손 위에 올려놓고 있다(좌), 아테나는 전쟁시는 한손에 창, 평화시는 한손에 방패를 들고 있다(우)

이처럼 아테나가 아버지의 딸임을 보여주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하나는 서구 문학사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재판인 오레스테스 사건이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아가멤논)를 살해한 어머니(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머니를 죽인다. 아폴론이 오레스테스를 변론하여 주장하기를, 어머니란 단지 아버지가 뿌린 씨앗을 키우는 역할에 불과하며 남성은 여성보다 뛰어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여성의 몸을 빌리지 않고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온 아테나의 탄생을 들었다. 아테나 역시 이복동생인 아폴론편을 들어 오레스테스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함으로써 어머니와의 연대감보다는 가부장제의 원리를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판결을 이끌었던 것이다.

그 다음, 아테네 관련 신화 중 유일하게 여성과 관련된 사건이 있다. 공예 혹은 수공의 여신이기도 했던 아테나가 아라크네와 융단짜기 솜씨 대결에 나선 것! 늘 그렇듯이 인간이 신에게 도전하면 벌 받는다는 뻔한 얘기다. 그런데 아라크네가 벌을 받은 것은 솜씨가 아테나보다도 뛰어나서가 아니라, 아버지 제우스의 불륜행각을 다큐멘터리처럼 꼼꼼하게 융단에 새겨 넣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제우스가 변신해서 여성들을 유혹하는 장면들, 즉 백조로 변신해 레다를 유혹하는 장면, 황금비로 다나에의 사타구니로 들어가는 장면, 황소로 변해 에우로파를 화간(?)하는 장면 등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테나는 분노에 차서 그녀를 거미로 변하여 영원히 실에 묶여 직물을 짜게 만들어버렸다.
▲ 틴토레토, 아테나와 아라크네, 1543-1544,


이처럼 아테나는 완벽한 아버지의 지지자다! 그런데 신화 속 아테나가 현실에서는 어떨까? 아마도 아버지를 많이 닮은 딸이니, 부성의 세계가 상징하는 바를 지향하는 삶을 살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보다는 머리로 움직이고, 충동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며, 상처받지 않으며 그 자체로 완전함을 추구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 속의 아테나들은 여기서 한발 더 앞서(?) 나갔다. 그녀들은 가부장적 아버지를 사랑하는 동시에 혐오하기도 했고 저항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대전제는 변함이 없었다. 여하튼 여자들의 일생에 아버지의 역할은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 성공한 여자들을 보면, 정말 멋지고 든든한 아버지, 그리고 딸에 대한 그 아버지들의 인정과 격려가 숨어있다.

여성 예술가는 말할 것도 없다. 바로크의 빛나는 여성작가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 카미유 클로델, 프리다 칼로, 루이즈 부르주아 등. 그녀들은 아버지와의 애증관계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동기부여와 입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카미유 클로델은 오빠가 죽고 뒤늦게 얻은 예쁘고 똑똑한 딸로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대신 어머니의 혹독한 천대와 멸시 속에서 정신병원에서 꽃에 물주다 생을 마감해야 했지만!
 
그리고 프리다 칼로 역시 아버지의 딸이다. 몽상가이자 사진가였던 아버지의 시적인 세계에 깊이 매료된 프리다는 간질병 환자인 아버지를 극진히 간호했고, 결국 아버지의 발작을 다른 방식(어느 파티에서 총을 난사했던 디에고를 아버지의 간질발작과 동일시했던 일)으로 실연해주었던 디에고 리베라를 아버지 대신 선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거미>로 유명한 미국의 설치미술가인 루이즈 부르주아는 가부장사회의 전형적인 폭군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그 아버지는 유독 세 남매 중 루이즈만을 자신과 닮은 똑똑한 딸로 인정했었다. 루이즈는 자신의 예술의 원동력은 아버지에 대한 혐오라고 했지만, 사실 그것은 아버지의 딸에 대한 인정과 사랑에서 나온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아버지의 딸`이었지만 아버지를 혐오하는 것을 작품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루이즈 부르주아(좌), 보그지의 모델이 된 프리다 칼로(우)

가만 보면, 이들은 아버지의 인정받는 딸이었지만, 전적으로 아테나적이진 않다. 그녀들은 아테나로 성장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로 자기 안의 타자들 즉 아프로디테, 헤스티아, 아르테미스를 불러내어 사이좋게 지낸 것이다. 그래서 신화 속의 아테나는 외로웠을테지만(어쩌면 외로움의 감정을 전혀 경험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현실 속의 아테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되었던 것! 그녀들은 자기안의 여러 존재를 불러내 다양한 체험을 마다하지 않았고, 외로움과 고독, 실연에 의한 상처도 모두 예술로 승화시켰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홀로 밤을 지새우는 아테나들이여! 자신안의 아프로디테, 즉 에로스와 생명을 살살 꾀어내시라! 그러면 자기 안의 처녀는 오늘로 죽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쾌활한 방식으로 말이다.
▲ 애도하는 아테나 여신, 기원전 470-450년경

 
▲유 경 희(미술평론가,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 대표)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년간 미술잡지 기자와 큐레이터로 일했고, 뉴욕대에서 예술행정 전문가과정을 수료하였다. 저서로는 [예술가의 탄생], [테마가 있는 미술여행] 등이 있다. 현재 대학원 최고위과정과 대기업, 공기업 등에서 하이브리드적인 미술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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