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그제 83일 만에 가진 정식 회동을 빈손으로 끝냈다. 대통령실은 “당정이 하나가 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했지만 이는 얼버무림일 뿐 사실은 결렬이나 다름없다. 한 대표는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한 대통령실 인적 쇄신과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 규명 협조를 건의했으나 윤 대통령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특별감찰관 임명도 건의했으나 긍정적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에 한 대표는 회동 후 예정했던 직접 대언론 브리핑을 취소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사이는 물론 국민의힘 내 친윤계와 친한계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 같은 여권 분열은 국정 동력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연금·노동·교육·의료 등 4대 분야 개혁을 포함한 각종 개혁 과제가 산적해 있어 여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모자랄 판에 정반대로 갈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추락하는 경제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가라앉은 민생을 되살리는 일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그러잖아도 각종 여론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상황에서 이번 회동은 윤 정부의 정책 리더십과 국민의힘의 여당 역할을 동시에 더 깎아내릴 것이 분명하다.
윤 정부는 다음 달 임기 후반기로 접어든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단임제를 시행하고 있어 임기 후반기 정권은 레임덕을 심하게 겪는다. 여권에서 얼마 안 남은 현재 권력보다 미래 권력의 가능성에 베팅하는 정치인이 늘어나고, 공무원들도 미래 권력에 밉보일까 봐 몸을 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임기 후반기 정권은 레임덕을 원만하게 극복하거나 최소화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의 회동에서 그런 지혜를 보여주지 못했다.
항간에는 한 대표가 이번 회동을 독자 노선의 시발점으로 활용한다면 대권 도전에 불리할 게 없다는 말이 오간다. 그렇다고 한 대표가 그런 계산에만 몰두한다면 국민 신뢰를 얻기 어렵다. 오히려 여권 전체를 바라보며 국정 동력을 되살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문제 등 국민이 주시하는 현안과 관련해 민심에 맞는 쇄신책을 내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