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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해병대 소속인 이 군마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를 준비하는 경주마 ‘아침해’였다.
◇ 지뢰로 다리 잃은 여동생 의족 위해 ‘아침해’ 보내
산악지역이 대부분인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신속히 고지를 점령하는 쪽이 전략적으로 우세하다. 6·25전쟁에 투입된 미군이 산길로 물자를 이동하기엔 지프차는 무용지물이었다.
미군은 물자를 이동을 위해 군마를 활용키로 한다. 이를 위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2년 10월, 미군 해병대 소속 ‘프레더슨’은 군마 수급을 위해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 ‘아침해’를 만나게 된다. 몽골계 혈통을 이어받은 암말 ‘아침해’는 140cm의 작고 단단한 체구로 산길을 다니기에 적합한 체형이었다.
당시 ‘아침해’의 마주는 ‘김학문’이라는 어린 소년이었다고 전해진다. 지뢰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여동생의 의족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든 말을 눈물로 떠나보냈다. 구입 가격은 250달러로 당시 1인 연평균 소득이 67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임을 고려한다면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의족을 사기엔 충분한 금액이었을 테지만 자신의 말이 전쟁터에 가야한다는 사실에 소년은 한참동안 통곡하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고 한다.
◇ 이름없는 군마에서 하사 ‘레클리스’로 진급
총탄과 포성이 빗발치는 전장에 투입된 ‘아침해’는 고지대로 탄약과 물자, 부상병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청각 발달로 큰 소리에 지레 겁을 먹는 다른 말들과는 달리 ‘아침해’는 우렁찬 포성소리와 여러 번의 총상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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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53년 3월 연천지역에서 중공군과 치룬 대규모 전투인 일명 ‘네바다 전투’에서는 닷새간 하루 평균 51차례나 물자를 옮기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미 해병대는 ‘아침해’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녀를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의 ‘레클리스(Reckless)’로 이름붙이며 진급에 진급을 거듭, 1954년에는 병장으로 진급했다.
‘레클리스’는 한국전쟁 종전 후 1954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송환됐다. 성대하게 치러진 환영식에서도 ‘레클리스’는 단연 스타 대우를 받았다.
무공훈장 등 5개의 훈장을 수여받고 1959년 하사관으로 진급한 레클리스는 이듬해인 1960년 공식적으로 은퇴하며 퇴직금을 대신해 평생 동안의 먹이를 보장받았다.
◇ 종전 후 미 해병대 마스코트로 추대
은퇴 후에도 동료 전우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등 활발한 퇴역군인 활동을 지내던 ‘레클리스’는 1968년 노환과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대하게 치러진 ‘레클리스’의 장례식은 미국 전역의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용맹함의 아이콘이 된 영웅마(馬)를 기렸다.
2013년 버지니아주 국립 해병대 박물관과 2018년 켄터키 경마공원에 ‘레클리스’의 동상이 건립됐다. 한국에서도 2016년 ‘레클리스’가 활동하던 연천군에 ‘레클리스 공원’이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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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하사관 레클리스의 이름을 딴 ‘Sergeant Reckless’라는 경주마가 활동했고, 그 마주의 제안으로 2014년 켄터키더비 경주 개최일에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 ‘레클리스’의 추모행사가 시행되기도 했다.
한국마사회는 전쟁 영웅이 된 한국의 경주마 ‘아침해’의 용기와 호국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2015년부터 말과 함께하는 뮤지컬 공연을 선보인 바 있다. 김낙순 한국마사회장은 “앞으로도 말과 함께 하는 이색 문화공연과 국가를 위해 몸 바쳐 희생, 헌신하신 숨은 영웅을 기리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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