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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내 N스튜디오. 폭염 못지않은 열기가 이곳에 가득했다. 국립발레단 단원들이 공연 준비로 한창이었다. 하반기 정기공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매일 같이 모여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유가 있다.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즌4’(8월 4·5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를 앞두고 있어서다.
◇무용수 8인의 안무작 무대에 올려
올해는 8명의 단원이 안무가로 나서 10분 남짓 작품을 선보인다. 박나리·김명규도 그들 중 하나. 이날 N스튜디오에서 만난 두 사람은 “‘KNB 무브먼트’도 4회째를 맞았고, 우리도 점점 리듬감이 생기고 있다”며 “좋은 무용수와 함께 안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고 말했다.
‘KNB 무브먼트’는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2014년 취임 이후 발레 안무가 육성과 레퍼토리 개발을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2015년 첫 번째 ‘KNB 무브먼트’에서 ‘요동치다’를 발표한 강효형이 지난해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 안무가 후보로 오르는 등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무용 팬의 관심도 커 전석 무료로 진행하는 이번 공연도 일찌감치 사전 예약이 끝났다.
무용수의 안무가 도전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무용수 개인에게는 보다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다. 나아가 무용인으로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몸을 써야 하는 무용 특성상 현역 활동이 길지 않은 무용수에게 안무가는 은퇴 이후 가장 편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박나리는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보다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게 좋아 앞으로도 가능하면 계속 안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나리는 2015년부터 꾸준히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오감도’ ‘페이스(Face): 마주하다’ 등 시와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얻었다. 평소 밝고 쾌활한 모습과 달리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안무작으로 매번 단원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 박나리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면의 이야기를 춤으로 표현하고 싶다 보니 다소 진지한 작품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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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 판소리 재해석 등 이색 시도
이번에 선보일 작품은 탄생을 뜻하는 ‘본’(Born). 박나리는 “엄마가 딸을 낳고 그 딸이 또 엄마가 돼 딸을 낳는 순환에서 시작한 작품”이라며 “탄생과 소멸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무용수로는 동생인 박슬기가 한나래와 함께 이인무로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박나리는 “(슬기는) 가족이라 출연 부탁도 하기 쉽고 춤도 잘 춰고 영감도 많이 준다”며 “나도 이번에 동생이 안무하는 작품에 출연한다”고 말했다.
김명규는 박나리의 첫 안무작 ‘오감도’에 무용수로 출연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안무가로 ‘KNB 무브먼트’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4년 국립발레단 입단 이전 ‘댄싱9’에 출연해 안무 실력을 뽐냈던 그는 국립발레단에서의 첫 안무작 발표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김명규는 “그동안 발레단 형, 누나들이 보여준 작품에 자극을 받아 꼭 한 번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명규의 안무작은 제목부터 신선한 ‘이몽룡아~’. 판소리 ‘춘향전’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 “‘KNB 무브먼트4’ 참여작 중 가장 ‘흥’이 넘칠 것”이란다. 김명규는 “잘 생기고 예쁜 무용수를 아이돌처럼 뽐내고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춘향전’의 이몽룡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무용수 섭외도 1년 전부터 공을 들였다. 김명규는 “1시간 이상 연습하지 않기, 휴가 기간에 연습하지 않기, 히스테리 부리지 않기, 배고플 때는 꼭 식사를 대접하기로 약속하고 무용수를 모았다”며 웃었다.
‘KNB 무브먼트’는 단원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안무 경험을 통해 무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 무엇보다 단원간의 관계가 더 끈끈해졌다. 박나리와 김명규도 ‘오감도’로 맺은 인연으로 각자의 활약을 기대하는 선후배로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박나리는 “명규는 워낙 움직임이 좋은 무용수라 ‘오감도’ 때도 나의 안무 작업을 많이 도와줬다”며 “이번에도 어떤 안무를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김명규는 “‘오감도’에 출연했을 때는 말썽만 피웠는데 이번에 직접 안무작을 준비해보니 정말 힘들더라”며 “나리 누나의 전작을 좋아했기에 이번 작품도 궁금하다”고 화답했다.
◇직접 안무한 작품 해외서도 공연하고파
두 사람은 이번 공연이 관객이 부담 없이 무용을 즐기고 각자만의 영감을 얻어가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아쉬움이 있다면 ‘KNB 무브먼트’에서 선보인 작품을 재공연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박나리는 “국립발레단만의 극장이 없다 보니 안무한 작품을 계속해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다”며 “어디든 춤을 출 수 있는 곳이라면 안무작을 들고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명규도 “작은 무대라도 좋으니 어디든 불러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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