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햄릿과 매크로…선택 강요의 시대

최은영 기자I 2018.06.04 06:00:00
[강도형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단어가 있다. 연일 뉴스와 포털 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한 ‘매크로’(동일 작업 반복 프로그램)다. 매크로는 댓글 추천 수를 조작
하는 수법으로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도되는 프로그램이다. 키보드에 같은 글자를 계속해서 입력하거나 마우스를 반복적으로 누르는 동작을 사람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기능으로, 주로 댓글의 공감 또는 비공감 버튼을 클릭하도록 악용됐다고 한다.

하지만 매크로는 원래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게시판에 글을 자동으로 게재할 수 있는 매크로의 경우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업체를 홍보할 때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정보통신기술(IT)의 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이 여론을 호도하는 데 쓰여 사회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여론이란 사회 대중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의견이다. 다시 말하면 개개인 선택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매크로가 그만큼 여론 조작에 효과가 있었다는 건 개개인이 정보를 선택할 때 다수의 공감을 얻거나 추천을 받은 정보를 우선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매크로는 원래의 기능을 잃고 개인의 선택을 강요하는 ‘괴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이다”라는 명언으로 우리의 삶을 표현했다.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과 함께 선택은 시작되고, 그 선택이 끝나는 순간 삶의 무대는 막을 내린다.

개인이 어떠한 의사선택 과정을 거쳐 결정을 하는지는 뇌 과학뿐만 아니라 마케팅 분야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부분이다. 뇌 과학자들이 소비자의 뇌 반응을 측정해 소비 심리를 밝혀내고 이를 마케팅에 응용하는 ‘뉴로 마케팅’이라는 분야가 최근 촉망받고 있다.

실제로 최근의 견해는 우리가 선택을 하는데 있어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1974년 캐나다의 두 심리학자 듀턴과 아론의 연구 결과는 특히 흥미롭다. 밴쿠버 카필라노 브리지에서 시행한 연구인데, 다리의 아슬아슬함 때문에 긴장해 심장박동이 빨라졌을 때 만난 이성에게 더 큰 호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심장의 박동수가 호감 있는 이성을 선택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연구이다.

청춘을 바쳐 선택하지만 이루지 못하고 술자리 단골 메뉴가 되는 게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다. ‘첫사랑을 오래 지나 만났는데 그 사람이 힘들게 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프고, 너무도 잘 살고 있으면 배가 아프고, 그 사람이 아직 나와 살고 있다면 머리가 아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선택에는 회한과 미련 그리고 아픔이 남기 때문이리라.

정말 우리는 선택을 하고 사는 것일까? 아니면 선택을 강요당하고 사는 것일까. 1970년 발간된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이라는 저서에서 앨빈 토플러는 현대 사회의 딜레마는 ‘선택의 과잉’에 있다고 예언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21세기에 들어서는 ‘선택의 역설’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많은 양의 정보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면서 오히려 선택이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선택 피로증이다. 이렇듯 우리는 순간순간 옳은 선택을 강요당하며 살아간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유명한 구절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 햄릿은 덴마크 왕자로서 엄청난 아픔과 혼란을 경험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햄릿은 선택을 강요받고 끊임없이 고뇌한다. 그 선택의 비극은 그를 둘러싼 개인들의 욕망의 굴레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햄릿 자신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욕망과 불안의 갈등이 본질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갈등 구조에서 극단적인 행동은 그를 파국으로 이끄는 숙명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선택의 이면에는 욕망과 불안이 따르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선택의 운전대를 잡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비극적 선택을 피하기 위해서는 매크로처럼 유령으로 등장해 햄릿에게 복수를 종용하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우리의 의식이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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