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통신망인 5세대(G)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5G 상용화를 앞두고 각국 기업들이 표준화와 통신장비 선점 등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파고가 향후 반도체·통신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싱가포르계 반도체회사 브로드컴이 미국 통신칩회사 퀄컴을 인수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행정명령에서 “동등한 다른 어떤 인수 또는 합병도 금지한다”면서 “브로드컴이 퀄컴을 사들이면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고 밝혀, 사실상 퀄컴 매각을 차단했다.
이로써 지난해 11월부터 산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1170억달러(약 125조원) 규모의 ‘반도체 빅딜’은 수포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들어 브로드컴의 인수를 막은 것은 퀄컴이 가진 5G 기술 때문으로 분석된다.
3G(WCDMA)에 이어 4G(LTE) 분야에서도 표준특허로 막대한 수익을 거뒀던 퀄컴은 5G와 관련해서도 여러 특허권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최근에는 LG전자, 에이수스, 후지쯔, HTC, 오포, 샤프, 소니, 샤오미 등 스마트폰· PC 제조사 18곳에 5G 칩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가 5G를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기술 등과 연계된 ‘국방·군사 기술’의 일환으로 본다는 점도 한몫했다. 중국 기업이 5G 기술을 장악해 미국 통신사업에 진출할 경우 미국 기업이 중국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 미국 내 통신기밀이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본 것이다.
브로드컴이 퀄컴의 악화된 재무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비주력 사업과 상당 부분의 특허를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인수를 막은 배경으로 여겨진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수 불허를 권고한 미국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브로드컴의 인수는 5G에 관한 퀄컴의 지배적 지위를 약화시켜 중국 기업인 화웨이의 시장 지배를 허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선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가 통신분야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5G 시대에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해외 반도체· 통신 기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에 이어 다시 한번 중국 기업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 만큼, G2 무역 전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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