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언제부턴가 임원 승진을 앞둔 공기업 직원들 사이에서는 승진을 꺼리는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별’을 달아준다고 해도 마다하는 그들의 속내를 들어 보면 공통적으로 ‘적은 급여’와 ‘짧은 임기’를 꼽는다. 방만경영 등을 이유로 정부 통제가 강화되면서 임원의 권한이 대폭 축소된 것도 공기업 임원이 ‘기피직’이 된 배경 중 하나다.
임원들의 연봉을 까보면 ‘빛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로 <이데일리>가 주요 공기업 임원들의 평균 연봉을 살펴본 결과 한전 상임이사 6명이 받는 평균 연봉은 1억1138만원이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 임원들이 받는 평균 연봉은 각각 1억200만원대, 9100만원대에 그친다. 이밖에 △한국지역난방공사 9678만원 △한국수력원자력 1억111만원 △한국광물자원공사 8502만원 △한국공항공사 9330만원 △부산항만공사 9557만원 등으로 1억원 안팎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경영평가 성과급이 더해져 최종 연봉이 책정되지만, 실적 부진으로 경영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공기업 임원들은 예산상 책정돼 있는 급여가 전부다. 공기업 임원 급여는 정부가 공공기관장 급여를 차관급 수준에 맞추고, 임원 급여는 기관장의 80% 이하로 규정한 탓에 ‘제자리걸음’이다. 이로 인해 공기업 임원 중에는 직전 연봉을 받거나, 이전 연봉보다 깎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기업 관계자는 “임원 직전 직급인 ‘1급 갑’의 경우 평균 1억원대 연봉을 받는다”면서 “1급 갑 중에서도 고참급은 임원 연봉보다 많기도 하다”고 말했다.
◇2년짜리 비정규직..“차라리 정년 채우자”
공기업 임원은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계약직이기에 퇴직 시기에서도 손해를 본다. 공기업의 경우 대부분 50대 초중반이 되면 ‘임원 승진 케이스’가 된다. 공기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은 2년의 임기만 보장해준다. 일부 공기업이 성과에 따라 1년을 연장해주는 ‘2+1’ 계약을 맺는 정도다. 임원이 된 후 2~ 3년 안에 승진이 안 되면 옷을 벗어야 한다 .
대부분은 딱 한번 임원을 맛보고 계약 만료와 함께 회사를 떠난다. 기관장과 감사 등 주요 보직이 ‘낙하산’으로 채워지는 상황에서 한 번 더 승진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참급 직원들 사이에서 “차라리 60세 정년 퇴직 때까지 회사를 다니는 것이 백배 낫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내년부터는 정년을 앞두고 연봉이 깎인다지만, 그래도 이득이라는 것이 공기업 직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힘 빠진 임원들..‘권한은 없고 책임만 잔뜩’
한 공기업의 임원은 “(임원) 할 맛이 안난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할 것도 별로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부가 공공기관 부채 관리를 위해 관리·감독을 강화하면서 예산과 인력, 복지지출, 신규사업 등을 강력하게 통제하다 보니, 공기업 사장이나 임원들이 갖는 재량권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업 실적이 부진하거나 의사결정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임원들이 떠안아야 할 책임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결국 권한은 대폭 줄었는데, 책임만 잔뜩 늘어났다는 것이다.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때로는 숨이 막힐 지경”이라면서 “임원이라는 자리가 권한은 없고 책임만 강요되다 보니 직원들이 기피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임원 승진 케이스가 된 직원들은 임원이 되지 않기 위해 도망다닐 정도”라고 전했다. 공기업의 다른 관계자는 “직원들이 ‘임원이 되면 좋고, 안 되면 더 좋다’는 말을 한다”며 “2년짜리 ‘허수아비 임원’을 하느니 정년을 채우겠다는 건 지금 같은 현실에서 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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