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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1. ‘바바리 코트’에 검정 선글라스를 쓴 한 남자가 등장했다. 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하 ‘소뿔자르고…’)에서 서울경찰청의 황백호 경위 역을 맡은 배우 박완규다. ‘당수도’(唐手道·맨손 무술)를 연마한 무술고수다. “모두 다 올라와!” 상대 배우들을 링으로 불러내 싸우는 장면에서 게임처럼 효과음이 흘러나오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과장된 말투와 몸짓, 캐릭터가 등장할 때 날리는 꽃가루 등. 영화 ‘다찌마와 리’를 연상케하는 공연은 시종일관 어이없는 유머를 객석에 날렸다.
2. “뜨그덕, 뜨그덕, 뜨그덕.” 저질 웨이브를 추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3명의 왕자들. 노래에 맞춰 남자배우들이 장소를 옮기며 느끼한 춤을 선보인다. 사무실에서, 미용실에서, 오토바이 위에서, 구멍가게 앞에서도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난다”며 노래를 부른다. 능청스러운 이들의 연기에 등장인물도 웃음을 참지 못한다.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된 뮤지컬 ‘난쟁이들’의 홍보영상. 일명 ‘난장픽션나노드라마’로 불리는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총 1만 6000뷰 이상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B급 코드’. 일명 ‘병맛 코드’라고 불리며 이해할 수 없는 설정과 카피로 소비자의 허를 찔러 웃음이 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인기리에 방송중인 tvN의 예능프로그램 ‘SNL코리아’와 싸이의 ‘강남스타일’ 등이 대표적. 한동안 대중문화를 흔들던 B급 코드 바람이 최근 공연계에도 불고 있다. 29일까지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소뿔자르고…’와 내달 26일까지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난쟁이들’은 ‘B급 유머’를 적극 활용해 색다른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연극평론가인 조만수 충북대 교수는 “최근 공연은 대중이 즐거워하는 코드를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며 “현실이나 정치적인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환기하는 과정에서 ‘B급 정서’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치찬란한 ‘싸구려 티’
포스터부터 강렬하다. 오버스럽게 표현된 수사반장과 섹시한 표정의 여형사, 손에 붕대를 감고 무림고수의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 등 대놓고 ‘싼티’를 보여준다.
‘소뿔자르고…’는 코믹액션무협판타지를 표방한 창작극으로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첫 번째로 선보인 레퍼토리 작품이다. 3중 액자 구조로 허상을 좇는 현대인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공연을 보는 내내 B급 유머를 유감없이 즐길 수 있다. 무술고수들이 대결을 펼치는 장면에서 ‘정지 화면’으로 상대 고수를 때려눕히는 장면이라든가 취조받던 피의자들이 갑자기 링 위에서 트로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등에서 어김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일규 무술감독은 “과장되고 유치한 B급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무술에 변형을 시도했다”며 “만화적인 상상력과 리얼한 액션을 무대화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터그로 참여한 배선애 연극평론가는 “솔직하고 과감하며 뻔뻔한 B급 정서는 관습과 권력을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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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 코드’ 영상으로 화제
개막 전부터 연이은 영상공개로 화제가 된 ‘난쟁이들’. 대중들의 허를 찌르는 콘셉트로 제작된 영상은 공연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져 창작초연임에도 티켓 예매순위 10위권 안에 머물며 순항 중이다.
‘난쟁이들’은 우리가 알던 동화 속 주인공들을 유쾌하게 비튼 창작뮤지컬. 선공개된 뮤직비디오는 ‘굿바이 찰리’ ‘미스터 캐스팅’ ‘미스 캐스팅 최유하 편’ ‘미스 캐스팅 백은혜 편’ ‘빅 편’ 등 총 5편이다. 여배우는 예쁜척 하기보다 쓰레기봉투에 들어가거나 창문을 넘으며 망가진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을 욕하는 동료들의 신랄한 뒷담화를 들은 두 남자는 옥상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한참을 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현실을 반영한 픽션으로 신선한 웃음을 선사하며 각 영상마다 3000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공연의 제작을 맡은 송승환 PMC프러덕션 대표는 “라이선스처럼 알려진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끄는 게 중요했다”며 “‘재밌는 동영상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는데 색다른 홍보영상에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홍보를 담당한 랑 관계자는 “소재 자체도 유머스러워서 잘 맞았다. 대본 없이 배우들이 즉흥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며 “주류가 아닌 ‘병맛’ 유머로 역설적인 웃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