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그는 감옥에서 죽을 것이다.” 지난 2009년 648억달러에 달하는 금융사기극을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 전 미국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게 150년 징역형이 내려진 것을 두고 한 외신은 이렇게 보도했다.
당시 메이도프의 변호인은 71세의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법원은 단호했다. 당시 사건 심판을 맡았던 데니 친 판사는 “메이도프의 11개 범죄에 대한 형량을 하나씩 더해보니 150년이 나왔다. 중대한 범죄는 중대한 처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대로 선고했다”고 말했다.
메이도프가 처음 체포됐을 때만 해도 그는 1000만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아내 명의의 호화 맨해튼 저택에 연금생활을 하며 호의호식했다. 하지만 법은 그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메이도프는 감옥에서 생을 쓸쓸하게 마감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화이트 범죄’에 대한 중징계의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고수익을 미끼로 금융사기를 벌였던 텍사스의 노먼 슈미트는 330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70억달러의 금융 사기극을 벌인 앨런 스탠퍼드 전 스탠퍼드인터내셔널은행 회장은 징역 110년, 분식 회계를 저지른 월드컴과 엔론의 대표는 각각 25년과 24년형을 선고받았다.
한국의 현실은 자못 다르다. 기업의 오너들이 법정에 나타날 때는 입을 맞춘 듯이 휠체어가 등장한다. 건강 악화와 그간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고려해달라고 호소한다. 구속도 피하고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 각종 이유로 사면 복권되는 게 공식이 됐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법원은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혐의로 이 회장에게 벌금 1100억원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내렸다. 당연히 이 회장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그해 말 정부는 이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그리곤 이듬해 이 회장은 보란 듯이 경영에 복귀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지난 2008년 1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 혐의로 유죄가 인정됐지만, 징역 3년으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1000억원대 분식 회계 혐의로 유죄를 받은 박용성 두산 회장도 징역 3년으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둘다 모두 사면됐다.
최근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의원 23명은 횡령·배임죄로 처벌받은 재벌 총수에게 집행유예가 아니라 반드시 실형이 선고되도록 하는 내용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업 오너에게 집행유예를 내리던 관행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기업인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만인은 법 앞에 평등’이라는 원칙에 위배된다. 하지만 돈 있는 기업인들이 호화 변호인단을 앞세워 만들어낸 ‘집행유예→사면’이라는 역사는, 과연 그들에게 평등한 잣대가 적용됐는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국민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기업은 권한과 책임을 모두 다할 때 생겨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