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고용보험기금에서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급여로 나가는 지출이 급증함에 따라 대량실업 대비와 고용안정 및 직업능력개발 사업 등 고용보험의 본래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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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고용보험 적립금은 8조 8832억원, 남은 빚은 7조 7208억원이다. 고용노동부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10조 6581억원을 예수금으로 빌렸고, 이 중 2조 9373억원을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두 차례에 걸쳐 갚고 남은 금액이다. 평균 연이율은 1.7% 수준으로 약 1300억원을 매년 이자로 내야 하지만, 10년에 걸쳐 상환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고용 위기가 닥칠 수 있어 적립금은 최소한의 준비금으로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도 많지 않다. 고용부가 공자기금에서 10조 6000억원 넘게 빌렸던 2020~2022년 정부가 기금에 투입한 예산은 3조 5156억원에 그쳤다.
고용보험기금 사용처는 크게 실업급여와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사업 지원금으로 나뉜다. 실업급여는 △구직급여 △조기재취업수당 △출산전후 휴가급여 △육아휴직 급여 등으로 나뉜다. 이중 비자발적 실업 때 지급하는 구직급여가 고용보험기금 지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문제는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급여 등 모성보호 급여 지출이 급증하면서 기금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금의 본래 목적인 대량실업 대비와 직업능력개발 지원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도 정부는 일·가정 양립 지원 강화를 위해 올해 육아휴직 급여 등에 총 4조 225억원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고용보험 수입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난해 수입이 약 18조원 규모인 것을 고려하면 수입의 23% 수준이다.
모성보호 급여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등 질 좋은 일자리에 다니는 사람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중 육아휴직 급여를 수급한 사람은 0.7%에 그쳤다. 300인 이상 사업장(1.3%) 대비 절반 수준이다.
‘고용보험서 분리해 관리’ 공감대
이 때문에 모성보호 급여를 고용보험에서 분리해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고용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비임금 근로자로 모성보호 급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출산 및 육아휴직 급여는 고용보험기금이 아닌 건강보험에서 나가야 한다”고 했다. 고용보험을 담당했던 전직 고용부 관료 역시 “모성보호를 고용보험에서 담당하는 나라는 없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 주요국은 모성보호를 가족 및 양육수당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우리만 육아휴직 개념으로 보고 급여를 지급한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최근 모성보호 급여를 고용보험기금이 아닌 별도 기금 또는 예산에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보험 포럼은 재정 안정화 이후 보험 적용 대상의 추가 확대 여부를 비롯해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방안 등도 순차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정부 예산 등 추가 재원 조달 필요성과 함께 현재 보험료율(현행 노사 각 0.9%)이 적정한지도 살핀다.
이와 함께 실업급여인 구직급여의 수급 기간(최대 9개월)과 수급 요건(피보험자격 6개월) 개선도 논의할 예정이며 플랫폼 노동자 등 노무제공자에게 더 까다롭게 적용 중인 구직급여 수급 요건의 완화 여부와 구직급여 상한액 및 하한액 적정성 등도 다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과제가 모두 재정이 뒷받침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기금의 재정 안정화에 대한 논의는 지속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재원 확대를 위한 방안 역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총장은 “청년 실업, 중장년 조기 퇴직, 디지털·AI 전환, 트럼프발 국제 외교안보 질서 개편 등 일자리 환경이 급변하며 노동시장이 재편되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실탄’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유 총장은 “적립금이 부족하다 보니 직업훈련 등엔 예산이 필요한 만큼 가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재원 조달방식까지 고민해 경제 위기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