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 있다. 지난 5일 이데일리가 방문한 서울 동작구의 기상청 총괄예보관실에는 전국의 날씨를 책임지는 예보분석관 12명이 있었다. 북상하는 장마전선으로 전국이 비상이 걸렸던 이날, 이들은 이동하는 비구름을 예의주시하면서 한시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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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총괄예보관실에는 10명 내외로 구성된 4개조가 교대로 근무한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이변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곳은 주말과 공휴일에도 쉬는 시간 없이 항상 비상체제다.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총괄예보관실에서 만난 박정민(50) 예보분석관(예보관)은 기상청에 입사한 지 23년 된 베테랑 예보관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기상학을 공부하고 싶었다는 박 예보관은 공군을 거쳐 기상청에 왔다. 군에서의 관련 경력까지 더하면 30년 가까이 날씨를 분석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 일이 어렵다고 말했다.
박 예보관은 “예보관을 보조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50명이 매일 기상현상을 챙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보관들은 교대근무에 몸을 적응시키면서 매시간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날씨 데이터를 분석하고 공부해야 한다”며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제 일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가족에 대한 책무나 개인의 삶을 많이 포기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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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에도 이들이 이토록 집중하는 것은 전 세계 기후학자들로부터 ‘불공정한 비교’로 불릴 만큼 복잡한 한국의 지형 때문이다. 비는 수증기로부터 만들어진다. 한국은 3면이 바다이고 각 바다의 수심과 해류는 제각각이다. 국토는 주요 기압계의 경계가 나뉘는 아사아대륙의 끝에 있다. 또 땅의 70%는 산지라 동쪽과 서쪽의 날씨가 극단적으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각 지역별 날씨는 국내외 기상 상태뿐 아니라 전 세계 상황을 종합해서 예측해야 하는데 한국은 국토가 작아 위성영상에서 구름이 1cm만 움직여도 도 단위로 날씨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박 예보관은 “2022년 8월 서울 강남구에 시간당 144㎜의 폭우가 내릴 때 강북에는 0.5㎜만 내렸다”며 “두 지역의 직선거리는 20㎞밖에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연의 예측불가능성이 가장 힘든 과제”라며 “예보관은 항상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관측·예측·소통 강화해 피해 예방…“안전 위해 최선 다할 것”
오랜 경력에도 박 예보관이 두려움을 강조하는 것은 군 복무 시절 발생한 사고 때문이다. 1998년 4월 1일 박 예보관은 해안가에만 눈이 내린다는 날씨 정보를 확인해 전달했다. 그러던 중 그는 특전사들이 동사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날 충남 민주지산 정상 부근에는 갑작스러운 강풍과 폭설이 발생했다. 그곳에서 행군을 하던 당시 특전사 흑룡부대(현 국제평화지원단) 대원 6명은 급격한 기온 저하로 목숨을 잃었다.
박 예보관은 “그때 우리나라는 위성이 없어서 예측이 어려웠다”며 “이날 현상의 원인이 최근 ‘아산만효과’로 밝혀졌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기상법 제1조는 기상재해와 기후변화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한다”며 “예보관은 늘 두려움과 겸손한 마음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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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틈 없이 이번 주 장마를 분석하던 박 예보관은 기상 예보를 한 단어로 표현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꿈”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평생 꿈꾸는 일인데 아직 손에 안 잡혔어요. 그래도 계속 노력해서 국민 여러분이 안전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약속이자 전부 같아요.”